미군 3만 명 증파 ‘오바마의 아프간’ 승부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미 육군 수송 차량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프간 중동부 와르다크 주의 마이단 샤르 마을을 줄지어 지나가고 있다. 현지인이 모는 오토바이 한 대가 차량 행렬 옆을 지나고 있다. [마이단 샤르 AP=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규모 미군 증원을 단행하기로 했다. 파병 속도도 예상보다 빨라졌다. 오바마는 증원이 수세에 몰린 아프간 전세를 역전시키고 이슬람 무장세력인 탈레반 세력을 뿌리뽑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성공한다면 오바마는 차기 대선을 보장받는 건 물론,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앞길이 순탄치 않다는 점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아프간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지난 8년간 실정을 거듭, 부패를 만연시켰다. 올 8월 대선에서는 대규모 부정선거를 저질러 정통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이 때문에 아프간 정부가 무기력한 상태에서 미국이 병력과 자금을 투입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영국과 소련의 침공이 실패로 끝나며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아프간이 미국에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이란 우려도 여기서 나온다. 미국은 1960~70년대 베트남 내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무능력한 현지 정권을 대신해 주도적으로 전쟁에 나섰다 천문학적 비용과 6만여 명의 미군을 희생시킨 채 쫓겨나야 했다.

아프가니스탄 반군들이 도로에 사제 폭탄을 설치하는지 감시하는 미 공군 소속 폭탄 제거 요원.[마이단 샤르 AP=연합뉴스]

◆목표는 탈레반 척결=오바마는 미 국방부의 증원 요구를 수용했다. 미군 3만 명을 추가 파병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및 동맹국이 수천 명 규모의 병력을 지원하면 증원 병력은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나토군 사령관이 요청한 4만 명에 근접한다. 매크리스털은 그 정도 병력이 있어야 아프간 전역에서 이슬람 무장 반군인 탈레반을 몰아낼 수 있다고 밝혔다. 뉴스위크도 최근 4만 명가량을 증원하면 아프간 전역에서 탈레반을 척결하기 위한 대규모 전투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증원으로 미국의 아프간 전비는 한 해 300억 달러(약 35조원)에서 400억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은 7688억 달러로 내년에는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군 철수 수순=오바마의 아프간 전략은 현지 군·경찰을 증강해 미군 철수를 앞당긴다는 게 핵심이다. 내년 2월 미군 훈련교관 1000명을 아프간에 배치, 현재 9만4000명인 아프간 병력을 내년 10월까지 13만4000명으로 증강할 계획이다. 당초 예정보다 4년 앞당긴 것이다. 오바마는 1일 연설에서 아프간 병력을 증강시켜 탈레반에 맞서게 해야 미군의 감축 또는 철군이 빨라질 수 있음을 설명하고 출구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오바마는 아프간 정부의 대응에 따른 단계적인 미군 증파안을 내놓았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의 노력이 부진하고 미군 증파 효과가 미흡할 경우 증원을 중단하거나 아프간 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2012년 차기 대선까지 아프간 전쟁을 끝마칠 태세를 갖춘 뒤 2017년 미군 철군을 완료하겠다는 일정을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 아프간 가나=WP는 아프간에 추가 파병하는 미군을 어디서 빼내 보낼지 결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주한미군의 아프간 파병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미군은 미 영토에 100여만 명, 한국·일본·독일 등 39개국에 40만 명가량이 주둔한다. 이 중 한국에는 2만8500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오바마는 지난달 19일 오산기지를 방문해 “여러분 중 일부는 아프간에서 근무했고, 여러분 일부는 다시 파병될 것”이라고 밝혀 주한미군 중 일부가 아프간에 파병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