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산자부장관·송병락 서울대부총장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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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호산업자원부 장관과 송병락 서울대 부총장이 7일 세종로의 산자부 장관 집무실에서 대기업과 벤처의 융합을 한국형 성장모델로 잡아야한다는 소위 쌍두마차론과 정보산업인력 10만 양병론을 비롯한 한국경제의 중장기 비전을 놓고 대담을 가졌다.두사람은 지금까지 우리는 외환위기 탈출에 골몰했으나 이제부턴 새로운 국가경쟁력강화방안을 찾아야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송부총장:대기업과 벤처기업이 힘을 합쳐야한다는 쌍두마차론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김장관:산업화는 늦었지만 다행히 정보화에서는 선진국과 시차없이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됐다.그렇지만 제조업의 중요성도 간과되서는 안된다고 본다.지금은 정보의 산업화와 산업의 정보화가 필요한 시점이다.대기업과 벤처를 대립구도로 보면 안된다.

-송부총장:공업화 초기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공업화에 치우쳐 농업을 무시한 것은 역사적인 잘못으로 판명됐다.우리가 한때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몰아부쳤지만 섬유는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한 산업으로 남아있다.

▶김장관:정보통신기술(IT)혁명은 그 자체는 경제기반(인프라)의 개혁에 불과하다.인프라와 제조업이 만나야 한다.영국에서 발명된 증기기관도 2백년 뒤 방적기와 만나면서 진짜 산업혁명이 시작됐다.IT도 제조업과 결합돼야 콘텐츠가 채워지고 신산업혁명이 일어날 것이다.이것이 쌍두마차론이다.

-송부총장:슘페터는 오래전에 대기업의 혁신(이노베이션)을 강조했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의 혁신도 중요해진 시대다.정부가 벤처와 코스닥을 활성화시킨 것을 적절했다고 본다.그러나 지나치면 거품이 된다.고시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벤처로 가고 요즘에는 고시를 통과한 중견관료조차 벤처로 가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벤처기업 지원 육성정책을 계속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는데.

▶김장관:한국은 미국·네덜란드·이스라엘·핀란드·아일랜드와 함께 세계 6대 벤처 성공국가로 평가받고 있다.그러나 벤처도 이제는 파이낸싱(금융) 모델에서 벗어나 기술개발 중심의 이노베이션 기능을 강화해야 거품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앞으로 대기업과 벤처,중소기업,연구기관 사이의 ‘4자(者) 선(善)순환’이 일어나야 하고 이것은 굉장한 효과를 낼 것이다.이것이 바로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동안 좋은 인력이 벤처로 많이 이동했고 벤처의 활력이 대기업에 파급될만큼 벤처들도 한단계 올라섰다.이제는 정부가 벤처를 집중적으로 육성·지원할 시기는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고 본다.벤처의 활력이 유지되면서 역기능을 제거하는 쪽으로 정책이 나아갈 것이다.

-송부총장:세계는 인도의 소프트웨어 인력이나 러시아 과학 인력 등을 유치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반면 국내 문호는 너무 폐쇄돼 IT쪽 전문인력이 부족해지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 필요한 인력에는 즉석에서 영주권을 내주고 있다.이런 세계적 변화 속에 우리의 외국인력 도입정책은 3D업종에 너무 집중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김장관:현재 국내 IT인력은 6만명이 부족하고 앞으로 3년동안 10만명의 인력을 양성해야한다.우리 나라는 시민권이나 국적 취득이 너무 어렵게 돼 있다.

미국의 그린카드와 비슷한 골드카드제를 도입할 방침이다.기업간 상거래(B2B)분야를 중심으로 골드 카드를 발급받은 외국인들은 자유로운 출입국과 국내기업 취업을 보장하겠다.

또 세계적인 30개의 유명 공과대학과 사이버 벤처대학망을 구축중이다.현재 18개 대학에서 가입 확약을 받았는데 미국의 스탠포드,독일의 자유베를린대,스위스의 츄리히공대가 포함돼 있다.국내기업들이 이 사이버망을 통해 고용예약제와 현지연수를 활성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송부총장:피터 드러커 교수는 “앞으로 경쟁력을 높이려면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보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강점을 보강하는 21세기형 경제발전 모델을 정립해야할 때다.물이 빠지면 위기라고들 하는데 거꾸로 바구니로 고기를 퍼올릴 수 있는 좋은 찬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탈출 과정에서 너무 서구화 일변도로 달려왔다.많은 기업들을 외국에 팔았다는 느낌이다.대기업 중심의 한국모델을 중소기업을 축으로 하는 대만식 모델로 바꾸어야 한다는 앨빈 토플러의 지적에도 동감할 수 없다.21세기에는 성공한 한 나라의 모델만을 뒤쫓아서는 안된다.

▶김장관:외국 모델을 좋은 점만 따와서는 안되고 우리 스스로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데는 동감이다.

예전에는 일본식 모델,대만식 모델 등이 중심이었으나 개인적으로 네덜란드식 모델에 관심이 많다.네덜란드는 영국·독일·프랑스 사이에 끼여서도 신(新)통상국가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것은 한국에 매우 시사적이다.

네덜란드는 외국기업이 투자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로 꼽히고 있다.우리도 현재 10% 이하인 외국자본 투자비중이 15∼16%까지 올라와도 괜찮다고 본다.

엔화강세로 일본기업의 해외탈출이 재현되고 중국도 조립산업에 힘을 쏟고 있어 한국을 세계적인 부품생산 단지로 바꾸는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를 위해 서해안에 독일 등 유럽기업 전용 부품공단 설치를 위한 협의를 끝냈고 현지실사를 하고 있다.남해안에는 일본의 부품기업 전용공단을 유치할 생각이다.

-송부총장:1월에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돼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무역흑자 기조 정착이 중요하다.세계경제의 유동성이 높아져 넉넉한 무역흑자만이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보장해줄 수 있다.

▶김장관:개인적으로 1월의 무역적자 내용을 뜯어본 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수입이 늘었지만 주로 기계와 설비도입이 많았다.이런 수입은 바로 우리의 생산능력 확충으로 연결된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를 너무 하지 않았다.올해는 기업들의 설비투자 붐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2월부터 다시 무역흑자가 나고 있는데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무역흑자가 줄어드는 것은 오히려 좋은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송부총장:국제 원유가 상승이 올해 경제운영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한국은 에너지 소비구조가 일본과 비슷하지만 1인당 생산성은 일본이 오히려 3배가 높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장관:얼마전 주요 신문들이 일제히 에너지 가격을 올리라는 사설을 쓴 적이 있다.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에 대한 국민적 여론조성이 필요하다.

산자부 실무진들의 조사에서 국내에너지 소비의 30%를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에너지 절약을 위해서라면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가격의 현실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리=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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