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현장을 간다] "돈 뿌린데 표 나더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역감정이요? 저도 처음엔 높은 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실제 표는 돈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

지난 1월 초 출마를 결심하고 고향에 내려온 이른바 386세대인 여당후보 A씨. 그는 고향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같은 말을 들었었다.

"사람은 괜찮은데 당이 그래서…. "

진심으로 유권자를 설득해 내 사람 2백명을 모으겠다는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났다.지구당대회 직전까지 조직 가동은커녕 조직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거론하는 '당(黨)' 이라는 문제가 사실은 핑계라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됐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훌륭해도 누가 생계를 전폐하고 자기 돈 써가면서 남을 돕겠어?" 한달 가까이 버티던 그는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일단 접어야 했다.

'조직가동비' 를 계산해보고 그는 또한번 절망을 느껴야 했다.선거법상 그가 활동비를 줄 수 있는 사람은 40여명.

그러나 실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3백여명에 이르는 통.반책에 10만원씩, 읍.면.동책에게 1백만원씩을 지급해야 했다. 조직가동비라는 '기름칠' 한번에 5천만원이 들어갔다. 공조직도 이런데 사조직까지 굴리는 후보들은 도대체 어떻게 돈을 조달하는지 궁금했다.

일단 돈이 들어가자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었다.

"당이 나빠서" 란 말은 쏙 들어가고 "그 친구 열심히 한다" 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지구당대회도 성황리에 마쳤다. 이렇게 해서 들어간 조직가동비는 3억여원.

중앙당 지원금과 친척.친구들에게서 빌린 돈 등 2억원에 자신의 전재산 1억원을 쏟아 부었다.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지역 신문에서는 자신을 '유력후보' 로 거론하고 있다.

"선거법이 개정돼 이 정도라고 해요. 예전 같으면 20억원 이상 풀어야 한다는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

요즘 그의 최대 관심은 정치개혁.국리민복 같은 거창하고 화려한 명제가 아니다. 앞으로 열흘 동안 지역구에 쏟아부어야 할 조직가동비 5억원에 온 신경이 집중돼 있다.

중앙당에 거의 매일 하소연은 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자신이 그렇게 증오했던 기존 정치인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간다는 자괴감이 수시로 그를 괴롭힌다.

"정치판에 나오지 않았으면 몰라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잖아요. 돈만 마련된다면 얼마든지 당선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신선한 '386세대 정치 신인' 이 아닌 또 하나의 '기성 정치인' 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조민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