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여성 장군의 분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전쟁과 군대는 아득한 옛날부터 남성의 영역이었다. 인류의 조상이 수렵과 채집으로 먹이를 구할 때 채집은 여성이, 수렵은 남성이 맡은 데서부터 시작된 이 전통은 가부장적 정치사회제도가 자리잡음에 따라 더욱 굳어졌다.

동양에서는 여성을 어린이와 함께 '아녀자(兒女子)' 라 하여 독립된 인격으로 보지 않았고, 서양에서도 역시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원래 군인이란 남성 중에서도 명예로운 직업이었다. 근세 이전에는 평민이 전쟁에 동원되더라도 일꾼 노릇에 그쳤고 전사(戰士)의 역할은 귀족의 몫이었다.

근대에 들어와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 시행에 따라 군대의 문이 넓어졌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전유럽을 상대로 싸울 수 있었던 이유가 귀족의 군대인 다른나라 군대와 달리 대혁명 후의 프랑스군이 평민층을 전면적으로 동원한 데 있었다고 한다.

국민의 군대라 해도 여성에게까지 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여군(女軍)은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발전을 시작했고, 그중 앞선 나라가 미국이다. 육.해.공군에 3성장군이 하나씩 있고 이들은 모두 일반병과에서 남성장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육군 최고위 여성 클로디아 케네디 중장이 몇년 전 자기 사무실에서 다른 장군에게 강제로 포옹과 애무를 당한 성추행사건을 밝히고 나서 큰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미 군부내에서 여성 성공의 상징과도 같은 케네디 장군까지 이런 수모를 겪을 지경이라면 아직도 여군의 위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네디 장군은 3년 전 한 인터뷰에서 성적 모욕의 경험을 묻는 질문에 답한 일이 있다. 하급장교 시절엔 문제를 개인적으로 처리했지만, 최근의 한 사건은 상급자에게 보고했으며 그결과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가 취해진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바로 그 사건이 이번에 공식제기한 사건으로 보인다.

4년 전 문제를 이번에 다시 제기하는 것은 그 장본인이 최근 중요한 보직을 맡게된 것을 '부적절' 하게 여긴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엄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사무적으로 보고했지만 지휘계통 내에서 '조용히' 처리한 결과 징벌효과가 오래가지 못하는 데 불만을 품고 문제를 공식화한 것이다. 남성의 방종을 관용하는 미 군부의 '남성문화' 에 반기를 든 셈이다.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보는 인습은 어느 사회에나 끈질기게 남아 있다.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려고만 해서는 풍속의 관성을 막아내기 어렵다. 성범죄자의 신원을 인터넷 등에 공개하려는 시도는 인습을 고치는 길로 생각해볼 만한 방법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된 풍속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충격적 방법도 필요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