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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외면하는 울산 ‘고래콜’ 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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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울산시는 이달초 회사 택시 800대로 브랜드택시 고래콜을 출범시켰다. 신용카드 결제,안심귀가서비스 등 시민들의 택시 이용편의를 명분으로 8억원의 시 예산을 지원한 사업이다. 그러나 상당수 고래콜 운전기사들이 신용카드 결제기기 이용을 거부, 시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울산시 제공]

“5000원도 안되는 택시비를 신용카드로 낸다고요? 아직 등록도 안했고….”

회사원 이모(49)씨는 28일 오후 10시쯤 울산시가 자랑하는 브랜드택시 ‘고래콜’을 이용했다가 낭패를 봤다. 잔돈처리의 편리함 때문에 일부러 신용카드 결제기가 부착된 고래콜을 골라서 탔는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 카드를 내밀었다가 면박만 당한 것이다. 택시기사는 “시에서 신용카드 결제기계를 달아주니 그냥 다닐 뿐 아직 사용자 등록을 하지 않아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며칠전 고래콜을 처음 이용했을 때도 핀잔만 들었다. “미리 신용카드로 결제한다고 얘기했어야지, 계산기에서 요금을 지워버린 뒤에 카드를 내면 어쩌라는 거냐”는 게 택시기사의 얘기였다.

울산시가 8억원의 예산을 들여 회사택시 800대로 5일 출범시킨 브랜드택시 고래콜. ‘시민들의 불쾌감만 키우는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울산시가 내걸었던 ‘품격높은 서비스’ 가운데 가장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신용카드 결제를 외면하는 택시들이 많기 때문이다.

울산시에 따르면 승객이 택시요금을 신용카드로 낼 경우 수수료는 2.4%로 1만원에 240원꼴이다. 출범에 앞서 택시운송사업조합(사용자 단체)와 노조대표들은 ‘원칙적으로 수수료는 회사가 부담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상당수 개별 택시회사들이 운전기사들을 상대로 ‘수수료를 운전기사가 부담한다’는 각서를 받자 노조에서 울며 겨자먹기라며 반발했고, 그 결과가 택시기사들의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 외면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국택시노조 울산본부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카드 수수료 부담을 택시기사에게 떠넘기려는 택시회사에 대해 울산시와 시민들이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친절서비스를 해줄 수 없다”며 노골적인 대 시민 협박까지 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브랜드 택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천양지차로 나타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태화강콜(개인택시 가운데 희망자 800대로 구성)의 경우 택시를 보내달라는 시민의 전화가 하루평균 5000건인 반면, 고래콜의 경우 이달 4일부터 26일까지 거의 한달간 받은 콜전화가 800여건에 그쳤다”며 “이는 신용카드 결제 등 서비스 차이가 주요 요인인 것같다”고 말했다. 태화강콜은 운전기사가 사업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카드수수료 떠넘기기 갈등이 없다.

태화강콜을 운행하는 조모(49)씨는 “신용카드 결제를 시작한 이후 하루평균 10만원이던 수익이 12만~13만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2000~3000원정도의 카드수수료는 기꺼이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시의 김규섭 대중교통과장은 “대단찮은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노사가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하는 건 수익금 증가라는 실리를 내팽개친 자존심 싸움”이라며 “그 때문에 이용자 불편을 볼모로 갈등을 계속하다간 고래콜 전체가 외면당하는 소탐대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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