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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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바자는 원래 페르시아어로 시장을 뜻한다고 한다. 요즘은 공공기관이나 단체에서 자금을 모으기 위한 일시적인 장터로 널리 알려졌다. 단시간에 기금을 마련하기에 바자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듯하다. 더불어 기업이든 사람이든 바자를 통해 가장 쉽게 나눔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 바자에 온 독자들은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마련한다는 실리 외에 자신이 지불한 돈이 어려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바자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판매가 모두 끝난 뒤, 모인 돈을 집계하는 시간이다. 돈 세는 기계를 미처 준비 못했던 재작년, 바자가 끝나고 돈이 담긴 박스를 가져와서 전 직원이 방바닥에 둘러앉아 돈을 세야만 했다. 평소에 100만원 다발도 잘 안 만져보던 우리가 어찌나 서투른 손놀림으로 돈을 셌던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셈도 여러 번 틀렸다. 그러다가 1000만원, 2000만원 이렇게 금액이 올라가면서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고 우리 모두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만세를 부르며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8000만원이 넘는 거금(?)이 든 박스를 자선단체와 그 단체의 홍보대사였던 신애라씨에게 넘겨주면서 얼마나 가슴 벅차고 감격스러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뿌듯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지난해에는 우리 잡지 바자 사상 최고의 모금기록을 세웠는데 불과 네 시간 만에 1억원이 넘는 거액이 모였다.

가끔 주변에서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을 본다. ‘봉사’와 ‘나눔’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거나 특별한 단어가 아니고 우리의 생활 속에 가까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지인들 가운데 소리없이 오랜 기간 누군가를 돕고 있는 이들이 적잖다. 그들은 모두 그 나눔 행위를 통해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더 얻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상대적으로 가진 게 이렇게 많은데… 내가 너무 투덜거리며 사는 건 아닌가’ 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는 이, 어렵지만 밝게 사는 이들을 보면서 더욱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이들이 많다. 매일 마시는 커피 몇 잔 절약하면 누군가의 한 달 식사가 해결되고 누군가의 한 달 생활비가 되고… 나눈다는 것, 돕는다는 건 작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올해의 바자는 지난 11월 초 노란 은행잎이 아름답던 가로수길에서 4시간여 진행되었고, 2000만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바자가 끝나면 늘 그렇듯이 직원들은 거의 다 녹아웃 상태로 뻗는다. 하지만 즐거운 고단함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만큼 보람과 가슴 벅찬 중독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달여 남은 2009년. 12월은 가슴 벅찬 이웃 사랑의 감동으로 마무리해 보면 어떨까.

윤경혜 COSMOPOLITAN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