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권력의 사유화 우려되는 권익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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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러한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던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들어서는 새롭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민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 때문도 아니고, 국가 청렴도를 끌어 올려서도 아니다. 단지 이재오 위원장 때문이다. 이재오 위원장은 감사원·검찰·경찰·국세청과 함께 반부패기관 연석회의를 정례화하겠다고 했다가 심한 반발을 산 적도 있다. 국정감사에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바 있다. 이때부터 권익위원회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우려에 화답이나 하듯이 국민권익위원회는 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을 보면 위원회 소속을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변경하고 공직자의 부패 조사를 위한 금융거래정보 제출 요구 권한 등을 담고 있다. 부패척결을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계좌추적권과 조사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세청·금융감독원·검찰이 나누어 담당하는 기능과 권한을 모두 가진 위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권한이 강화되는 정도가 아니라 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수사기관 수준이다. 이러한 막강한 위원회의 위원장이라면 웬만한 중앙부처 장관의 권력을 능가하니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어 국무회의 발언권까지 갖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존의 수사 및 감찰 기관을 능가하는 옥상옥을 지으려는 것이니 관련 기관들의 반발과 저항은 당연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접근 방식이다. 제도적 권력의 중요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러니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대의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직자 기강을 확립하는 것과 국민권익위원회의 권력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왜 권한을 강화해야 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검찰·금융감독원과 각 부처의 사정기관 등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기관들의 기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기존의 정책을 바꾸거나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는 합당한 절차를 거쳐 논의하고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합의를 통한 변화만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정당한 권위도 부여받을 수 있다. 하물며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들겠다면서 위원장의 자의적 판단을 그 근거로 삼는 것은 민주적 입법 절차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권력의 사유화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미국식 삼권분립 제도의 근간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불신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 본성을 비관적으로 보고 실망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인간들이라면 당연히 주어진 권력·금력·명예 등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러한 인간을 탓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원천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의 실세로서 영향력을 구가하는 것을 일일이 막을 수야 없겠지만 기존의 제도화된 권력을 능가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민주주의라면 용납할 수 없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