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새 12배 커지는 세계 탄소시장, 우리가 노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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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24면

노종환 대표는 “탄소 배출권 거래와 관련한 원스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CO2) 등 온실가스를 내뿜을 권리(탄소 배출권)를 사고 파는 ‘탄소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세계 이산화탄소시장의 거래 규모는 2005년 108억 달러에서 지난해 1263억 달러로 3년 만에 12배로 성장했다. 유럽과 일본 등 선진 38개국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 줄이겠다고 약속한 것이 배경이다. 이들은 1997년 ‘교토 의정서’란 국제협약을 맺었다.

국내 최초 탄소 배출권 거래회사 한국탄소금융 노종환 대표

이 협약에 따라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나라나 기업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모자라는 만큼 탄소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반면 정해진 양보다 적게 온실가스를 내뿜거나, 의무가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면 탄소 배출권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한국은 아직까지 비싼 돈을 내고 탄소 배출권을 사야 할 부담이 전혀 없다. 교토 의정서에서 온실가스를 줄일 의무가 없는 개발도상국에 한국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탄소 배출권이 생기면 이것을 팔아 돈을 벌 수는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30일 수력발전으로 얻은 7129t의 탄소 배출권을 ㈜한국탄소금융(KCF)에 판다. 한국탄소금융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탄소 배출권 거래와 투자를 하는 민간기업이다. 이번 거래로 오가는 돈은 1억7000만원에 불과하지만 국내 기업끼리 탄소 배출권을 사고파는 첫 사례다.한국탄소금융의 노종환(55) 대표는 “국내 탄소시장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눈을 해외로 돌리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동력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30년 가까이 기후변화 대응 업무를 담당한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탄소 시장 전문가다. 26일 오전 서울 반포동 한국탄소금융 사무실에서 노 대표를 만났다.
 
지난해 10월 민간기업 투자로 설립
-한국탄소금융은 어떤 회사인가. 공기업인가, 민간기업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민간기업이다. 다만 회사 설립의 배경에는 지식경제부의 정책적 판단이 작용했다. 자본금은 모두 50억원인데,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탄소펀드에서 20억원(지분율 40%), 후성·휴켐스·KT&G에서 각 10억원(20%)씩 냈다. 우리가 탄소시장에서 하는 일은 주식시장에서 증권사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증권사가 고객을 대신해 주식을 사고팔고, 직접 투자도 하듯이 우리는 탄소 배출권을 거래한다.”

-한국은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나라가 아닌데, 어디서 탄소 배출권이 생기나.
“유엔이 인정하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청정개발체제(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사업이라고 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라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이 자체적으로 또는 선진국과 함께 온실가스를 줄이면 그 실적만큼 CER(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이란 탄소 배출권을 받는다. 이를 위해선 유엔이 정한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선 80여 건의 CDM 사업을 추진 중이며, 그중 30여 건은 이미 유엔에 등록을 마쳤다.”

-국내에서 하는 CDM 사업은 주로 어떤 것인가.
“태양광이나 수력·조력·풍력 같은 발전사업이 많다. 친환경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면 석탄이나 석유를 태우는 화력발전에 비해 온실가스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는 대체로 작은 편이다. 연간 100만t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는 네 건밖에 없고, 나머지 대부분은 수천~수만t 규모다. 과거에는 사업 구상 단계부터 외국 기업과 연계돼 있었고, 배출권 판매도 대개 외국 기업을 통했다. 그러나 한국탄소금융이 지난해 10월 출범한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10~12월 석 달간 우리 회사의 배출권 거래 실적은 70만t이었고, 올해 전체로는 200만t 정도로 보고 있다.”

배출권 가격은 t당 12유로 선
-한국탄소금융은 CDM 사업에서 나오는 배출권을 어디서 거래하나. 가격은.
“프랑스에 있는 ‘블루넥스트’란 탄소 배출권 거래소다. 배출권도 주식처럼 선물·옵션 같은 파생상품과 현물로 나뉘는데, 블루넥스트는 현물 배출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90%가 넘는다. 한국탄소금융은 이 거래소의 회원사다. 교토 의정서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한 나라 중에는 우리가 유일하다. 배출권 가격은 경기에 민감하다. 경기가 나빠→공장을 조금 돌리면→온실가스가 줄고→배출권의 수요가 적어져→가격이 하락한다. 경기가 좋아지면 반대가 된다. 올 초에는 배출권 가격이 한때 t당 7유로 선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4월 이후에는 t당 12유로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객이 맡긴 배출권을 대신 팔아주는 것 외에 다른 사업은.
“탄소 관련 사업의 구상과 설계부터 투자, 배출권 거래까지 탄소금융의 원스톱 종합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으로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중국의 화학공업회사, 캄보디아의 비료회사와 대형 CDM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사업은 3~4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투자에 필요한 자금은 탄소펀드를 활용한다. 한국투신이 운용하는 1200억원 규모의 탄소펀드가 있다. 수출입은행도 총 2000억원의 탄소펀드를 조성 중이며, 현재 1차 모집이 끝났다.”

-다른 지역보다 유럽에서 배출권 거래가 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내뿜는 1만여 대기업에 배출 허용량을 강제 할당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허용된 양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t당 100유로라는 비싼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탄소 배출권을 사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미국은 교토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의 심의가 남아 있다. 일본은 원하는 기업들만 자발적으로 배출권을 거래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최근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보다 4% 줄이겠다고 발표했는데.
“교토 의정서 같은 국제협약이 아닌 자율 감축 목표다. 목표 숫자가 얼마냐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의무가 아닌 자발적 감축으로는 시장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2012년 이후 ‘포스트 교토 체제’에서 한국이 의무 감축국이 될 것인지, 감축량은 어떤 기준에서 정해질 것인지 등 변수가 많다. 다음 달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포스트 교토 체제’에 대한 논의가 예정돼 있지만 정치적 선언에 그치고 구체적 협상은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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