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인, 제 뱃속 채운다고 볼까 겁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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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기도 수원시 병점역에 있는 수도권 서부지사에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김병연(66·사진)씨를 만났다. 그는 “난 비록 대체 기관사지만 승객들의 원망 섞인 눈초리를 볼 때면 두렵더라”며 “국가의 동맥을 잇는 중책을 맡은 철도 노동자라면 승객들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의 동맥인 철도는 어떤 이유로도 세워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철도청 시절인 1969년부터 기관사로 일하다 10년 전 퇴직했다. 26일에 이어 이틀째 대체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다. 올해에만 세 번째다.

- 노조활동을 한 걸로 안다.

“88년 철도노조 파업 때 서울 구로지부의 간부였다. 나도 머리띠도 매고 구호를 외쳐 봤지만 조직 안에 있으면 내 이익만 눈에 보인다. 밖에 나와 봐야 국민이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밖에서 볼 때 국민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여기나.

“철도인을 마치 제 뱃속만 채우려는 사람들로 본다. 모든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판이다. 그런데 철도만 사람을 못 줄이고, 월급을 올려 달라고 하면 누가 좋게 보겠는가. 현직에 있는 사람들만 이걸 모르는 것 같다.”

-다시 기관사가 돼 승객들을 보니 어떤가.

“부끄럽단 생각이 먼저 든다. 파업이 연례행사가 되다 보니 지탄을 받는다. 예전엔 기관사 정복을 입고 플랫폼에 서면 꽤 멋졌다. 기관사가 되겠다는 학생도 많았다. 요즘엔 누가 그렇게 보나. 반복되는 파업이 철도인들을 아주 거친 사람들로 보게 만들었다.”

-노사는 인원 감축과 임금체계 개편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철도가 국가의 동맥이라는 책임감이 부족한 것 같다. 방만한 공기업을 개혁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노조가 이걸 알아야 한다. 사측은 법과 원칙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노조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과도 연대하고 있다.

“사실 파업한다고 모든 조합원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또 조합이 주변 세력에 등 떠밀려 파업하는 것은 문제다. 우리가 파업할 때는 철도 노동자만 했다. 그런데 요즘엔 철도 노동자를 위해 하는 파업인지, 밖의 사람들을 위해 파업하는 것인지 헛갈린다.”

-노조원들도 후배인데.

“파업 뒤에는 조직 내 인간관계가 험해진다. 누군 참여했고 안 했고를 놓고 선후배·동료도 없이 갈등하고 반목한다. 명분 없는 파업은 반드시 큰 희생이 따르게 돼 있다. 서둘러 일터로 복귀해 더 큰 희생을 막아야 한다.”

수원=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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