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국가과학기술위부터 대폭 보강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얼마 전 정부는 내년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올해보다 10.5% 늘어난 13조6000억원 규모로 편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2010년 예산의 4.66%에 해당하는 것으로 투자비율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우리 미래에 대해 과학기술 분야에 거는 정부와 국민의 기대가 크다는 얘기다.

문제는 미래를 준비하고 신영역을 개척하는 데 쓰여야 할 과학기술개발 관련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할 것인가다. 과학기술 투자 중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치 새 가게를 여는 것과 같은 인식과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꾸준한 투자를 통해 우수한 연구인력과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도 있다. 정부의 R&D 예산지원 의지도 확고하다. 새로운 가게 개업에 비유하자면 설비·인테리어 전문가도 있고 원재료 공급처에다 우수한 종업원, 자금력까지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새 가게를 내고 성공시키기까지 필요한 것들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원자재 공급이나 종업원 교육 및 마케팅까지 종합적으로 조율하는 ‘가게 주인’의 역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아쉽다.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 투자 분야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업기획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수집과 기술예측이 필요하다. 또한 범부처 기획부터 연구개발 투자, 전·후방 기술 확보, 해당 분야 인력 양성까지 전체적인 내용에서 부족한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

현재 우리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예산 운용 시스템을 보면 각 부처가 부처 성격에 맞는 연구사업을 기획·집행하며,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을 검토해서 지원한 뒤 그 성과를 관리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는 과학기술 분야 예산편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예산편성 내용과 성과평가 결과를 보고받으며, 부처 업무 중 중복되는 부분을 조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 개발·조정체계에서 ‘가게 주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국과위다. 하지만 자체 기획기능이 부족한 지금의 국과위 운영 방식으로는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국과위에서 논의되는 자료는 기본적으로 각 부처가 만든 것이며,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제출하는 안건 역시 부처별로 계획한 내용들을 취합하고 정리한 것이다.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 투자를 할 때는 먼저 종합 설계를 제시하고 그에 맞춰 세부적인 설계와 진행을 부처에 분담시키는 방식으로 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과위가 범부처 기획을 주도하고 이 계획을 장기간 종합적으로 지원,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비상임 위원들과 소수의 실무인력만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국과위 시스템으로는 이런 기획과 종합관리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기획과 관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범부처 기획과 조정 등에 필요한 예산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 투자 기조에 맞도록 연구개발 조정체계를 보강하는 것이야말로 과학기술 예산의 효율적인 투자를 위한 선결 과제다.

신용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