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의 대만] 5.끝 민진당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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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선에서 승리한 민진당이 '대만 독립' 과 '자주외교' 를 외치던 야당 시절의 거친 모습에서 벗어나 책임있는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린이슝(林義雄) 주석(당수)주재로 23일 열린 중앙집행위에서 천자오난(陳昭男)위원은 '대만 독립' 을 명시한 당강(黨綱)을 수정하자고 제의했다. 민진당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독립주장을 철회하자는 것이다. 중집위원들은 찬성.반대.유보로 나뉘어 격론을 벌였다.

차이퉁룽(蔡同榮)중집위원은 "이번 총통선거는 사실상 대만독립 지지자들의 승리" 라며 "손바닥 뒤집듯 당 강령을 바꿀 수는 없다" 며 반대론을 폈다.

셰창팅(謝長廷) 가오슝(高雄)시장 겸 중집위원은 "독립주장 때문에 총통선거에서 이긴 것은 아니다" 며 수정을 지지했다.

토론이 격렬해지자 장쥔슝(張俊雄)중집위원은 "당강 수정은 당원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독립은 전체 국민의 이해가 걸린 중대사다. 당원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 다음에 논의하자" 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린원랑(林文郞)입법위원은 "천수이볜 당선자의 마음은 이미 대독(臺獨.대만 독립)을 떠났다" 고 강조하고 "결국 대세는 수정" 이라고 잘라말했다.

陳당선자는 유세기간 중 "당선된다면 공평한 국정수행을 위해 민진당 중집위원직을 사임하고 정당활동에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 고 밝혔다. 그는 소속정당을 망라한 인사들로 초당파 위원회를 구성해 양안(兩岸)정책 결정을 맡기기로 했으며, 이미 리위안저(李遠哲)중앙위원장에게 구성을 일임했다.

따라서 새 정부의 양안정책 결정에 민진당의 입김이 줄어들 공산이 크다.

23일 LA 타임스와의 회견에서도 陳당선자는 "독립 대신 양안간 평화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겠다" 고 공언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희망한다" 고 말해 변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민진당은 대만의 민주화를 위해 대만 독립을 앞세웠던 측면이 강하다. 국민당이 일당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통일의 과업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군사정권이 안보논리를 앞세웠던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대만 독립을 전제한다면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국민당 일당 독재를 계속할 이유가 자연히 소멸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진당 집권기간 중 '대만 독립' 의 색깔은 점차 엷어지거나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국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단교 당한 섭섭함이 한.대만 관계를 가로막아온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그 고리는 민진당 집권으로 끊겼다.

경제를 끌어올리고 중국에 대항할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다. 陳당선자가 한국에서 명예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따위의 개인적 인연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머리 속으로 이미 '아시아 공략' 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이베이〓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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