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진씨, 파산 아픔 딛고 '사이버 국제금융센터' 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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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손쉽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고, 중개기관에 비싼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세계최초의 사이버 국제금융거래센터' 를 표방하는 '딜 컴포저' (http://www.dealcomposer.com)가 지난 17일 문을 열었다.

이 사이트의 주인공은 ㈜01의 사장 이석진(李奭鎭.37)씨. 3년전 34세에 홍콩 페레그린증권의 채권담당 사장까지 오르면서 국제금융계의 황태자로 불렸던 '안드레 리' (미국명)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李씨는 변호사인 부친 이기창(李基昌.64)씨와 프랑스계 캐나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2세. 1994년 페레그린에 채권팀 책임자로 스카우트된 이후 매년 회사 전체수익의 35%를 올렸다.

그러나 97년 페레그린증권이 파산하자 책임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지목돼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가 파산한 뒤 바로 가족들이 있는 한국으로 왔다. 불심도 닦고(그의 집에는 불상과 각종 경전들이 가득하다), 특히 시간만 나면 인터넷을 공부했다."

지금의 회사는 98년 6월에 세웠다.

딜 컴포저는 세계 어느곳이든지 돈이 필요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접속해 들어오면, 각국에서 돈을 빌려줄 적절한 파트너를 연결해 서류작업까지 일괄 처리해주는 회원제 원스톱 서비스를 해주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거래 형태는 융자.채권 등은 물론 옵션.스왑 등 파생상품과 경매.입찰.주식발행까지 사실상 모든 분야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얼마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딜 컴포저를 '그의 천재성에 걸맞은 재기작' 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서울 논현동 두산빌딩 15층에 위치한 이 회사 풍경은 그야말로 다국적이다.

미국.영국.인도.러시아.중국 등 외국인이 전체직원 73명의 절반에 이른다. 이중 10여명은 94년 이후 줄곧 같이 움직였던 멤버들이다. 페레그린 파산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가 그의 소집명령에 다시 모였다.

"외국직원들이 본부를 샌프란시스코나 홍콩으로 옮기자고도 하지만 서울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의 국제금융 수요가 많은데다 한국의 인터넷기술은 세계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향서를 보내온 은행 등 10여곳과 이번주 중 먼저 사용자계약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올해 중 전세계에서 5백개 이상의 커뮤니티 구성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같은 인터넷 금융거래가 성공하면 그동안 몇몇 '큰손' 들이 돈줄을 거머쥐고 좌지우지해온 국제 금융시장의 양상이 바뀌게 될 것" 이라는 그의 장담이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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