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백신 해프닝' 초등학교를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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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찾아간 서울 강남구 D초등학교.

체육시간을 맞은 학생들이 발야구 게임을 하는 등 운동장은 시끌벌쩍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같은 시각 학교 건물안 교무실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이 학교 교감선생님의 말을 전하려는 방송사들의 카메라가 줄지어 교무실로 들어왔다. 교감선생님은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 때문에 하루 종일 업무를 못볼 지경"이라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전날 오후 4시 무렵 한 언론사의 인터넷에 오른 "신종플루 접종 초등생 집단 이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부른 파장은 의외로 컸다. 보도 내용은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받은 학생들의 이상증세가 잇따르는 가운데 서울 강남 한 초등학교에서 백신 접종을 한 학생 중 10%에 가까운 75명이 무더기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단일학교 최대 규모'라는 제목도 붙었다.

이 학교는 지난주 목요일인 19일 백신 예방 접종을 실시했다. 전교생 1008명 중 837명이 주사를 맞았다. 신종플루 증상으로 하루 평균 30~40명 결석하던 이 학교는 접종 당일에는 25명이 결석했지만 월요일인 23일 결석생은 80명으로 급증했다. 특정 학급에 결석자가 몰린 사실을 파악한 학교 측은 학무보들에게 "신종플루 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있으면 병원을 찾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 학부모로부터 "결석생이 많았다"는 제보를 받은 기자가 학교로 찾아와 학생들을 상대로 취재를 벌였다. 이를 발견한 학교 측은 기자를 불러 무슨 내용을 취재하는 지 물었다. 학교 측은 이때 '신종플루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 가능성을 처음 감지했다. 기자는 이 학교 보건교사의 말을 빌어 "19일 접종을 실시한 뒤 며칠 지난 오늘에서야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이상증세를 보인 것은 의외"라며 "5~6학년 고학년 학생보다는 1~3학년 저학년을 중심으로 더 많은 이상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기사를 올렸다.

인터넷 보도후 2시간여가 지난 오후 6시 무렵 질병관리본부와 강남구보건소 직원들이 긴급히 학교를 찾아와 확인 작업과 함께 한밤 역학조사를 벌였다. 이날 결석생 80명 중 백신 접종자는 61명이었고 19명은 접종을 받지 않은 학생이었다. 보건당국은 접종 학생 61명의 집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물었다. 발열자가 가장 많았고, 기침, 두통, 인후통 증세를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전화가 연결된 54명 중 37명은 증상 호전, 16명은 증상 지속으로 답변했다. 이러는 사이 "플루 백신 맞은 초등생 집단 결석" 뉴스는 인터넷과 방송 등을 타고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다음날 아침신문에도 보도되었다.

24일 오전 9시 "신종플루 백신 이상증세가 의심된다며 80명 가까운 학생이 집단결석한 서울 강남구 D초등학교에 대해 강남보건소와 보건 당국이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백신 이상증세가 아닌 신종플루 집단 발병으로 확인됐다"는 질병관리본부의 발표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예방 접종 후 이상반응 가능성보다 신종 플루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 아침부터 학부모, 기자 등으로부터 문의 전화가 학교로 밀려들었다. '백신 이상반응 가능성이 적다'는 보도가 나온 후 문의 전화는 줄어들었지만 오후 들어 방송사 카메라가 잇달아 찾아온 것이다.

학교 교문 앞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두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신종플루 예방 주사 맞았어?"
"예, 예"
"괜찮아?"
"무슨 말이예요"
"어제 결석한 학생이 많다고 하던데…"
"저는 몰라요"

3학년이라는 이들 학생은 '신종플루 백신 이상반응' 보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학생들이 물어왔다.
"무슨 방송이예요?"
"방송 아닌데"

방송사들의 인터뷰를 마친 교감선생님께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오늘도 결석생이 많았습니까?"
"어제보다 조금 늘었습니다"
"신종플루 한풀 꺾인 줄 알았는데, 이 학교는 이제 시작인가 봅니다"
"공교롭게도 백신 접종과 맞물려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백신을 맞은 고교생이 급성 마비성 질환인 '갈랑바레 증후군'이 의심돼 치료를 받고 있다는 뉴스가 일요일 나왔습니다"
"그렇군요"
"보건선생님이 많이 힘들어 하실 것 같은데"
"신종플루로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탈진 상태로 몸쳐 누웠습니다"
"학생들이 백신을 조금 더 빨리 맞았으면 좋았을텐데"
"결과적으로 시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교무실 밖으로 나오니 운동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이 학교의 '신종플루 백신 접종 후 집단 이상반응'은 해프닝으로 잠정 결론이 난 상태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 뉴스를 검색해보니 '백신 접종 후 이상증세 호소' 기사가 전국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번 파문을 해프닝으로 지나치기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신종플루 백신 접종이 늦어져 터져나온 상처는 아닐까.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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