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제주 택시사태 '네탓'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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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인택시 자격기준제 문제로 개인택시 기사들에 의해 도의회 본회의장이 점거당하고 도지사가 폭행당하는 사태까지 생긴 제주도. 이익집단의 '막가파' 식 행동도 문제지만 사태 이후 관련 기관.도의회의 대처과정도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제주도경은 사태가 벌어진 9일 오후 6시쯤 공보 관계자를 통해 도의회 운영위원장이 서명했다는 '확인서' 를 언론에 배포했다.

확인서에는 "도의회는 도민의 전당이므로 경찰력에 의해 (시위를)사전 저지할 필요성이 없다" 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이 시위.난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추궁을 당할 판이니 그 확인서는 경찰에 '방패막이' 가 됐을 법하다.

그러나 며칠 후 이 확인서는 사태 종료 직후인 9일 오후 5시쯤 경찰서의 한 정보과 간부가 도의회 운영위원장을 집요하게 설득해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사태의 파문을 우려한 경찰은 "해당 기관이 병력투입을 요청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는 '면피용' 해명 논리를 재빨리 개발해낸 것이다.

'도민의 전당' 이라며 경찰력 배치를 물리쳤던 도의회도 11일부터 연일 지방언론 광고 등을 통해 성명을 내놓고 있다.

"민원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의사당 폭력사태를 몰고온 도청 당국도 유감이며, 사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치안책임자 역시 문책해야 한다" 는 게 요지다.

전경 3개 중대가 도의회 방어를 위해 투입되려 하자 끝내 '배치 불필요' 를 고수하며 반대했던 당시의 꿋꿋함은 온데간데 없어 보인다.

'도백' 이 다치는 불상사를 겪은 도 당국도 이같은 성명에 자제심을 잃고 있다.

제주도 고위간부는 "최악의 집단민원이 예상됐던 개인택시 면허문제에 언제 도의회가 관심을 보이거나 조정을 시도한 적이 있느냐" 며 언성을 높인다.

책임있는 기관들마저 남의 탓만 하고 있으니 집단이기주의 사태 등은 누가 해결할 것인가. 관련 기관들은 시민에게 자신들이 제대로 서비스하고 있는지를 최대의 행동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양성철 기자 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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