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경제학] 10. 끝 저작권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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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847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한 카페. 부르제.앙리옹.파리조 등 3명의 작곡가가 함께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 식당 한켠에서 밴드가 이들이 작곡한 샹송을 사전허락도 받지 않고 연주하는게 아닌가. 격분한 이들은 1791년 발효한 음악저작권법을 내세워 식당 주인이 음악 사용료를 지급하기 전에는 음식값을 지불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식당 주인도 밥값을 내라고 맞섰다.

결국 이 일은 법정으로 비화했다. 1848년 8월 재판에 이어 이듬해 항소심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은 이들은 음악출판업자 쥘 콜롱비에의 지원을 받아 음악저작권협회(SACEM)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1850년 세계 최초의 저작권협회가 탄생된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오페라 외의 음악작품은 연주에 관한 한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없었다.

작곡가가 출판사에 악보를 넘기면 그 악보에 대한 판매는 물론 사용(연주)에 대한 이익도 출판사 몫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출판사는 점점 커졌지만 작곡가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이제는 음악출판사들도 악보를 인쇄해 판매.대여하는 것보다 연주 횟수를 늘려 저작권료를 챙기는 일에 골몰하게 됐다.

자사 소속 작곡가들을 적극 홍보해 작품 위촉이나 연주할 기회를 따내는 프로모터의 역할도 맡게 됐다.

무대나 방송에서 많이 연주할수록 수입이 늘기 때문이다. 출판업자들은 피아니스트를 고용해 가수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무료 공연은 물론 흥행에 실패한 공연에서도 일단 작품이 연주되면 작곡가 또는 그의 대행인에게 연주료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작곡가 개인이 모든 공연장을 누비거나 모든 방송채널에 귀기울이면서 자신의 작품이 연주되는지를 체크할 수는 없다.

저작권협회가 이를 대행하는 것이다. 모든 공연장과 악단에서는 프로그램을 SACEM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후 1914년 미국 ASCAP을 시작으로 영국(PRS).독일(GEMA).일본(JASRAC) 등이 저작권협회를 결성하게 됐다.

러시아가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한 것은 1972년. 라흐마니노프는 3곡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하고도 악보 출판으로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혁명 이전에 발표한 발레음악 '불새' 를 개작해 출판했으나 대부분의 지휘자들이 덜 복잡한 원래 악보를 사용하는 바람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SACEM.PRS 등 저작권협회에서는 저작권료의 수납 대행은 물론 신예 작곡가 발굴 및 신작 위촉 등 창작음악에 대한 진흥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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