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도자제가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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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대 총선과 관련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언동이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지 않기로 한 한국방송협회의 결의에는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물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행태들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고, 그 폐해가 '망국' 운운할 정도의 심각한 위험수위에 다다라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의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보도 자제를 구실로 사실관계의 발언내용을 삭제하거나 기술적 손질을 가할 수 있게 한 것은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음을 고려했어야 한다. 지역감정의 부작용 해소를 위해 언론의 본질을 포기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방송사들이 각기 나름대로 준용할 선거보도 원칙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각 방송사가 그에 따라 자율적으로 보도하면 될텐데 별도로 방송협회가 나서서 자제를 결의할 필요가 있었을까.

방송사들이 지역감정 보도를 자제한다고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칫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음성화해 악성 소문이나 유언비어 형태로 유통되면서 더 큰 폐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오히려 지역감정과 관련한 언동을 사실 그대로 보도, 적극적인 비판을 통해 유권자들의 양식에 호소하고 판단을 일깨우는 적극적 방식이 더 소망스럽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여론의 추이를 그때 그때 알려주어 유권자들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 책무다. 그런 점에서 선거운동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금지하는 현행 선거법은 문제가 있다. 총선 후라도 법개정을 통해 여론조사의 공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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