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피해자 집단 소송 첫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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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담배의 중독성을 높이는 연구를 계속해온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이 불리한 자료를 숨기거나 없앨 수도 있는 만큼 현장검증이 시급합니다. "

"정부와 담배인삼공사가 음모집단입니까. 공식으로 자료를 요청하면 받아볼 수 있는 만큼 급할 게 없습니다. "

10일 오전 11시30분 서울지법 557호 민사법정 앞. 흡연피해자 6명이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집단으로 제기한 첫 재판을 마치고 나온 원고측 배금자(裵今子)변호사와 피고측 박교선(朴敎善.법무법인 세종)변호사가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재판에서 원고측은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을 현장 검증하고 말기 폐암환자인 원고 6명을 법정에 불러 증언하게 해달라" 고 요청했다. 반면 피고측 朴변호사는 "피해자별로 재판을 따로 진행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첫 재판임을 감안, 피고측 신청만 기각하고 나머지 사안의 결정은 다음 재판으로 연기한다" 며 10여분 만에 재판을 끝냈다.

하지만 정작 양측은 법정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도진을 상대로 자료를 돌리고 자신들의 소송 전략을 소개하며 뜨거운 장외전을 펼쳤다. 앞으로 재판정 안팎에서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裵변호사는 "담배와 암의 상관 관계는 이미 세계 각국의 정부와 연구기관에서 연구를 마친 만큼 이번 소송에서 굳이 입증할 필요조차 없다" 며 미국.일본 등 외국 자료를 공개했다.

그는 또 "매출과 세금 수입에 눈이 어두운 정부와 공사측이 담배의 중독성을 높이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점을 밝혀낼 것" 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피고측은 소송을 철저하게 개인적.의학적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입장이다. 의학적 쟁점을 부각시키고 원고 개인의 병력을 추적, 재판을 길게 끌고 간다는 전략이다. 朴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집단소송이라는 원고측 주장은 잘못된 것이니 '공동 소송' 으로 불러 달라" 며 "담배와 암의 상관 관계는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시돋친 말이 튀어나오는 등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朴변호사는 "나도 담배를 가끔 피우지만 이게 무슨 독약이냐" 고 언급하자 裵변호사는 즉각 "만드는 사람이 해롭지 않다는데 소비자가 어떻게 알고 스스로 절제하겠느냐" 고 맞받아쳤다.

裵변호사는 11일 개봉되는 미국 담배회사의 내부 고발을 다룬 영화 '인사이더' 를 상기시키며 "한국에서도 내부 고발이 절실하다고 판단, 고발창구(02-2632-5190)를 개설했다" 고 말했다.

지난해 폐암환자 6명과 가족들이 민변 소속 변호사 21명의 도움을 받아 제기한 2차 담배소송은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2차 재판에서도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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