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불법이민 단속 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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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례없는 미국의 호황에 따른 인력난이 미국의 불법이민 단속 정책마저 완화시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9일 미 이민국(INS)의 불법 취업인력에 대한 단속의 고삐가 최근 급속히 늦춰졌다고 보도했다.

INS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체포돼 추방당한 불법 이민자는 약 8천6백명. 이는 1998년의 2만2천명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는 숫자다.

이는 INS가 단순 불법 이민자 모두를 단속하는 대신 불법 이민자 중 범법자 정도만을 골라내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기 때문이다.

INS 정책입안 담당관인 로버트 바흐는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외국인을 골라내는 데에 단속이 집중되고 있다" 고 밝혔다.

단속완화는 불법 이민자들의 '안도감' 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시카고 세탁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멕시코 출신의 불법 취업자 살바도르 실바는 "미국에 들어온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단속 공포없이 살아가고 있다" 고 털어놓았다.

현재 약 6백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불법 이민자들의 존재는 미국의 장기호황에도 낮은 임금상승률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들은 미국의 최저임금인 시간당 5.15달러에도 못미치는 저임과 열악한 환경을 감내하면서 미국 경제의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황이 장기화되다 보니 이런 인력마저 점차 귀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지속적인 활황에 따른 이들 인력 풀의 고갈을 경고할 정도였다.

INS의 불법 이민 단속완화는 노동시장의 저임 인력풀을 유지할 경제적 필요성 때문이다.

물론 INS는 새로운 불법 입국자들에 대해선 계속 엄단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멕시코 국경에는 단속반이 대거 보강됐다. 결국 현재 미국의 불법 이민자 정책은 '들어오는 것은 막되 일단 들어오면 내버려둔다' 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런 불법 이민 눈감아주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미국 경제가 조정기에 접어들면 다시 강화될 것이 뻔하다. 이미 80년대와 90년대 중반 미국의 실업률이 높았을 때 이민법이 대폭 강화된 실례가 있다. 현재도 일부 공화당 의원과 노동조합 등은 미국에서 불법이민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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