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 공짜표 문화] 上."내가 누군데…돈내고 볼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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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회 고위층의 공짜표 요구로 공연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도(본지 3월 9일자 31면)가 나가자 이번 기회에 무분별한 초대권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초대권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공짜 심리와 특권의식의 발로다. 공연예술의 자생력을 말살하고 있는 초대권 문제와 그 해결책을 2회에 나누어 싣는다.

과거에 비해 줄어들긴 했지만 외국의 유명 교향악단이나 인기 오페라.뮤지컬 공연에는 주최측에 국회의원 비서관이나 문화관광부 직원들이 초대권을 보내라는 전화를 걸어온다. 심지어 티켓 값을 줄테니 '초대' 도장이 찍힌 표를 달라는 요구를 해오는 경우도 있다. '초대권 소지자는 특권층' 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명성황후' 기사가 나간 9일 아침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정부 각 부처로부터 티켓 민원으로 시달려 왔다" 며 "이번 기회에 초대권을 뿌리뽑는 캠페인이라도 벌이면 좋겠다" 고 말했다.

㈜서울기획 이태현 대표는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H.O.T 등 빅 이벤트 직전에 돈을 줄테니 앞자리를 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도 해온다" 고 말했다.

초대권 요구에 시달리는 기획사들은 공연장에 나오면 직접 좌석권을 주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의 경우 주최측이 5만석 중 15% 정도를 '티켓민원' 에 써야 했다.

공연 제작비를 협찬하는 기업들이 자사 임원진이나 거래처.관공서에 뿌릴 목적으로 초대권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썰렁한 객석을 채워 연주자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주최측의 초대권 남발도 이같은 '공짜표'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4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주차장. 공연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이 버스.승합차에 올라탔다.

오페라 '류관순' 출연진들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 신도들에게 티켓을 무더기로 뿌린 것. 6회 공연에 '유료관객 3천4백32명, ''초대권 소지관객 4천3백83명. 출연 성악가들이 개런티의 일부로 구매해 뿌린 티켓까지 감안한다면' 초대권 소지자는 80%에 달했다.

지난 1월 27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공연 당시 1천8백68명의 관객 중 초대권 소지자는 5백53명. 극장측은 "텅빈 객석을 그냥 내버려두기가 아까웠다" 고 말했다.

외국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도 초대권으로 채우는 현실인데 2천석 이상의 대규모 공연장에서 열리는 독주회나 실내악 공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예술의전당 기획공연으로 열린 소프라노 P씨의 독창회의 관객 1천5백77명 중 유료관객은 68명. 나머지는 모두 연주자.협찬사가 동원한 초대권 소지자들이었다.

이장직.박정호.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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