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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평양 건너간 ‘드림걸즈’ 뉴욕서 기립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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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뮤지컬 ‘드림걸즈’ 미국 투어의 출발지는 할렘의 명소 아폴로 씨어터였다. 22일 극장을 찾은 1500여의 관객은 화려한 무대와 폭발적인 가창력에 뜨겁게 호응했다. [사진작가 조안 마커스 제공]


이렇게 기립박수를 쳐도 되나. 마치 콘서트장 같았다. 극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달았지만 관객은 가만히 있질 못했다.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릴 것 같은 에피의 절절한 노래가 끝날 때 객석에선 천둥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뮤지컬 ‘드림걸즈’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상륙했다. 극장은 맨해튼에서 한참 떨어진 할렘가의 아폴로 씨어터. 작품의 실제 배경이기도 한 아폴로 씨어터는 75년 역사의 흑인 전용극장이다. 흑인의 스토리를, 흑인의 애환이 묻어 있는 공간에서, 흑인 배우가 연기하자 객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국의 마당놀이마냥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눈시울을 붉히는 이도 많았다. 뮤지컬 관람이 아닌, 눈물과 웃음이 한데 어울러진 한바탕 축제였다.

◆흑인 감성의 진수=‘드림걸즈’는 올 2월부터 5개월간 한국에서 공연됐다. 미국 공연에서도 스토리·음악·무대·의상 등이 같았다. 출연진만 한국 배우가 아닌 흑인 배우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무대 예술의 핵심은 배우 아니던가. 180도 다른 공연이나 마찬가지였다.

작품은 촌뜨기 3인조 여성 그룹이 무명에서 스타가 되는, 성공 스토리다. 쇼비즈니스계의 도전과 좌절, 배신과 음모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중심을 잡아준 건 커티스(차즈 라마르 쉐퍼드 분)였다. 처음엔 다소 순박한 매니저처럼 보이던 그는 자신이 키운 그룹이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탐욕스런 냉혈한으로 변신했다. 한국 공연 때도 인기를 끌었던 지미(체스터 그레고리 분)는 무대 바닥을 휘젓고 다녔다.

백미는 에피(모야 안젤라 분)였다. 한계에 도달했을 것 같은 고음의 순간마다, 이보다 더 치고 올라가는 파워로 객석을 압도했다. 1막 마지막곡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과 2막 후반부 ‘Listen’를 부를 땐 관객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착 달라붙는 옷을 입은 것처럼 배우들은 흑인 특유의 감성과 탄력, 절절함 등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뮤지컬 제작의 글로벌화=뮤지컬 ‘드림걸즈’는 본래 1981년 미국에서 초연됐다. 이후 비욘세 놀즈·제니퍼 허드슨·에디 머피 등이 주연한 영화로 2006년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자 뮤지컬 재공연의 가능성이 조금씩 점쳐졌다.

그러나 브로드웨이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인건비·무대비 등 제작비 전반의 가격이 너무 높게 올라 미국 프로듀서 존 F 브릴리오는 차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 등장한 게 한국의 프로듀서 신춘수(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씨다. 신 대표가 “한국에서 재공연 스타트를 끊고 이후 미국 진출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의 자본·기획력, 미국의 창작력이 결합하는 새로운 제작 방식이었다.

브릴리오는 “한국에서 처음 공연을 했기에 미국 무대도 가능했다. 우리의 모험은 결국 성공했다”며 상기돼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큰 자본이 들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드림걸즈’ 재공연이 테크놀로지의 향연 속에 시작됐다”라며 호평했다.

공연전문지 ‘플레이빌’ 첫 페이지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이번 공연은 신춘수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처음 제작됐다.” ‘드림걸즈’는 내년 20여 개 도시를 돌며 미국 투어에 들어간다. 국경과 인종, 언어를 초월한 뮤지컬 제작의 글로벌화가 돛을 올렸고, 그 한복판에 대한민국이 있었다.

뉴욕=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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