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계의 주류 설치작가 강익중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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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디주 겟 잇(Did you get it)?"

매년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뉴욕 화단에서 난다 긴다 하는 작가들이며 미술관장.큐레이터들은 서로 "당신 '그것' 받았어?" 라며 은밀한 눈빛을 주고 받는다.

'그것' 이란 다름 아닌 피터 노튼이 준 '크리스마스 선물' . 노튼 유틸리티를 프로그래밍해 실리콘밸리의 갑부가 된 노튼은 미국 미술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컬렉터로 꼽힌다.

그런 그가 매년 크리스마스엔 뉴욕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미술계 인사 1천명에게 선물을 보낸다.

물론 형식이 '선물' 이기 때문에 1천명의 명단이 공개되는 법은 없다. 그래서 누가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선물을 못받은 이는 뉴욕화단의 주류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튼의 입김도 중요하지만 피터 노튼 재단 선정위원회가 그 해의 작가 활동을 치밀하게 검토해서 명단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력서에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비공식 랭킹이지만 영향력이 대단해 일단 이 선물의 존재를 알게되면 내로라하는 미술계 인사들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 스트레스' 에 시달릴 정도.

재미 설치작가 강익중(40)씨는 이 선물을 1994년부터 99년까지 6년 연속으로 받았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2인전을 열어 뉴욕화단의 주목을 처음 받은 이후 줄곧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제2의 백남준' '젊은 대가' (국내외 언론평). '20세기를 대표하는 1백20명의 아티스트' (지난해 독일 루트비히 미술관 선정). 지금 그의 위치는 이처럼 확고하다.

하지만 84년 홍익대 졸업식날 무작정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낮에는 프랫아트 인스티튜트 학생, 밤에는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난한 예술가였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3×3인치 그림도 일터를 오가던 지하철 안에서 탄생했다.

이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이민 1세대인 그가 어떻게 뉴욕 화단의 주류에 들어가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제일 간단한 답은 역시 실력이다. 강씨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같다고 표현할 만큼 '얼마나 오랫동안 허리를 구부리고 버틸 수 있나' 를 시험하며 아침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작업실에 틀어박혀 허리 한번 안펴고 작업만 하는 노력꾼이다.

여기에 자신의 작품을 철저하게 분석해내는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사고가 까다로운 현지 미술평론가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것 뿐일까. 노튼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 해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작가의 작품이 들어 있다. 1천명이 같은 작품의 1천개 에디션 가운데 하나를 받는다. 그러나 내용이나 일련번호는 문제가 아니다. 오직 '받느냐, 못받느냐' 만이 관심사다. 노튼은 선물을 줌으로써 '미술세계의 권력' 을 선물받은 셈이다.

바로 이 '권력자' 노튼이 휘트니 미술관보다 먼저 강씨를 알아보았다. 샌프란시스코 캡스트리트 프로젝트에서 열었던 개인전이 '행운의 기회' 였다. 노튼은 그를 찾아와 "나는 돈에 관한 한 동물적 감각이 있다" 며 작품을 샀다.

노튼은 또 강씨가 지난 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을 때 베니스에서 축하파티를 열어주었다. 지금은 휘트니 미술관 소장품이 된 강씨의 베니스 출품작을 사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강씨는 "뉴욕 타임스 리뷰 담당자에겐 안보내도 피터 노튼 재단에는 꼭 전시 팸플릿을 보내게 된다" 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예술가들이란 결국 돈많은 부자 손에 놀아나는 광대" 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물론 "광대 아닌 광대가 돼야 한다" 는 의지를 곧바로 보여주었지만 말이다.

한국 화단에서 강씨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이 두가지 있다. 그 하나가 백남준과 특별한 관계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국 화단의 중심인물인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장 데이빗 로스(전 휘트니 미술관장)가 그를 주류사회로 끌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는 무명의 강씨가 뉴욕의 내로라하는 휘트니미술관에서 대가 백남준과 2인전을 가진 이후 '떴다' 는 배경이 깔려 있다.

그래서 강씨에게 물었다. 정말 이 두 사람과 친하냐고.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백남준을 존경하지만 지금까지 네번밖에 만난 적이 없어요. " 데이빗 로스의 관계는 더 긴 설명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멍청하고 슬픈 농담" 이라면서 그가 털어놓은 것이 바로 피터 노튼과 얽힌 일화다.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휘트니 미술관장이었던 '데이빗 로스는 강씨와 친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이는 강씨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노튼을 겨냥한 포석이었다는 것. 데이빗 로스는 강씨의 후견인 격인 노튼을 보고 그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냉혹한 뉴욕 화단 정치의 단면인 셈이다.

"캡 스트리트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유명한 기획자 린다 블럼버그가 지난해말 모친상을 당했지요. 조문을 간 미술계 인사는 저뿐이었어요. 심지어 블럼버그가 키워낸 작가조차 없었어요. " 강씨의 설명은 간단했다. "블럼버그는 현재 실직 상태거든요. " 블럼버그는 물론 99년 노튼의 선물 명단에서 제외됐다.

우리에겐 패륜으로 비치는 이런 행동이 뉴욕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실력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그가 영향력이 없어지면 뒤도 안돌아보는 행동코드가 '처신을 잘 하는' 뉴요커다. 국내 화단이 '실력+인맥' 이 주요한 성공의 조건이라면 뉴욕 화단은 '정치' 가 판치는 동네다.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강씨는 뉴욕 미술계의 정치 파워를 등에 업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없어지는 순간 정치의 냉혹함을 맛보게 된다는 것을 강씨는 잘 아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강씨는 지금의 달콤한 현실을 마냥 즐기고 있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처럼 노튼이나 백남준을 들먹여 한몫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의 미덕을 쌓아나간다.

남들은 없는 인연도 만들어곤 하는 백남준과의 관계도 애써 줄여 말하는 강씨. 지난해 12월 남북한 어린이의 3인치 그림으로 이루어진 '십만의 꿈' 행사를 기획했던 강씨는 이 행사를 독일로 확대시키기 위해 힘을 쏟고있다.

뉴욕〓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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