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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 있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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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이 외교적으로 "거의 홀로 서 있는 것 같다"는 미하엘 가이어 주한 독일대사의 지적은 한번 듣고 흘려버리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얘기다. 일국의 대사가 주재국 외교상황에 공개적인 논평을 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가깝고도 유사한 파트너 한국과 독일'이란 주제의 강연 중 두 나라 간 상이점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온 얘기지만 보수 대 진보, 개혁 대 반개혁, 친노 대 반노와는 상관없는 한국 주재 주요국 대사의 눈에 한국이 외교 외톨이로 비춰지고 있는 점이 우리로선 두고두고 충격이다.

가이어 대사는 필자가 지난달 한 칼럼에서 독일 경제를 '유럽의 병자'로 비유하자 "개혁은 필요하지만 독일 경제가 그토록 엉망은 아니다"는 e-메일 논평과 함께 참고자료들을 첨부파일로 보내왔을 정도로 치밀하고 적극적이다. 그는 한국이 독일처럼 통일을 원하지만 관련국들과의 관계가 독일처럼 강력하지도 않고, 우호관계도 독일 상황과 다르다며 한국과 일본의 화해는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하다고까지 했다.

독일 통일은 동서독 간 인간적 접근이 무르익은 데다 관계국들 간의 외교적 정지작업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의 경우 남북 간 진정한 주민왕래는 요원하다.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외면한 채 북한체제의 환심을 사는 데 급급하다. 인권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이면서도 북한주민의 인권과 탈북자 보호를 위한 미국 의회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몰아친다.

우리의 4강 외교는 '해도(海圖)없는 항해'를 연상케 한다. 국제공조보다 민족공조가 우선이고 동맹국을 통일 방해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미국 정부가 고위 인사 방한 일정을 짤 때 '단 하룻밤도 한국에서 묵기를 꺼릴 정도'로 한.미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동맹관계는 계속 공고하다는 외교적 수사(修辭)만 믿고 미국의 변환전략 바닥에 깔려 있는 위험을 보려 하지 않는다. 자주나 협력적 자주라는 구호보다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안보를 위한 '국제신용' 확보가 급한데도 '미국에 당당해져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정서 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하영선(서울대)교수는 안타까워 한다.

일본은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미국을 따라간다. 미국이 OK 안 하면 빌려주기로 약속한 돈도 집행이 안 되는 설움을 외환위기 때 이미 겪었다. 우리의 짝사랑에 눈길 한번 안 주는 중국의 오만, 2020년까지 '소강상태'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입지와 역할에 관한 대안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브랜드였던 동북아중심국가 전략은 주변국들의 비아냥 속에 동북아 중심-동북아 경제중심-동북아 시대위원회로 추진체부터 쪼그라들었다. 주변 4강이 세계의 4강인 지정학적 여건, 무역의존도가 60%가 넘는 대외의존형 경제에서 외교적 외톨이는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다. 한 맺힌 대원군처럼 자주니 외세 배격이니 하면서 나라를 정신적 쇄국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철학자 김용준 교수의 개탄이 뜬금없지가 않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니 큰소리 좀 치면 어떠냐고 하겠지만 경제의 글로벌화로 주권의 힘은 날로 약해지고 국내 분위기에 따라 투자.생산.소비까지 해외로 빠져나가 졸지에 국내공동화가 빚어지는 상황은 왜 모르는가. 외교의 이념화, 특히 힘과 전략의 뒷받침 없는 닫힌 당당함은 국제적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다. 일회성 학문적 추출실험이 국제적 '핵 사건'으로 떠벌려져 한국이 코너로 몰리는 작금의 상황도 이와 결코 무관치 않다.

변상근 월간 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