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자 재산 심사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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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위 공직자 다수가 지난 1년 동안 주식투자를 통해 재산을 불린 사실이 드러나 직무 관련성 의혹이 일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다.

개인의 재산 거래 내역을 조사할 권한이 윤리위에는 없으며 관련 규정을 오해하는 바람에 조사방침이 잘못 발표됐다는 것이 관계자의 해명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조사를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공직자 재산 공개가 시행된 지도 벌써 8년째인데 공직을 이용한 재산 증식 의혹을 조사할 수 없다니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이런 사태는 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권이 공직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말로만 떠벌렸지 구체적인 실천 수단은 소홀히 해온 결과다.

공직자윤리법부터가 그렇다.

이 법 제1조는 "재산 등록과 공개, 공직을 이용한 재산 취득의 규제 등을 통해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직자 윤리를 확립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단은 이같은 목적과 동떨어져 있다. 재산 등록의 심사와 제재 규정이 재산 내역의 성실 신고 여부에만 집중돼 있다.

공직자 윤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주(株)테크' 의혹처럼 재산 형성과정에 대한 심사가 중요한데 재산 상황을 확인하는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다.

법적 장치가 허술한데다 실제 심사마저 부처별.자치단체별로 제 식구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1993년 재산 등록과 공개 제도가 시행된 이후 재산 내용이 문제돼 해임되거나 징계된 공무원이 10명 남짓이라는 사실이 공직자윤리법이 사실상 재산 신고 기능밖에 하지 못함을 잘 보여준다. 이래서야 어디 공직 부정부패의 근본적 처방이 가능하겠는가.

현 정권은 기회있을 때마다 공직 개혁 없이는 국가의 장래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부패 척결 의지를 밝혀왔다. 부패방지위원회가 구성됐고 입체적인 대책도 마련한다는 계획이지만 정부 부처간 의견 차이로 말만 무성해 또한번 구두선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언제까지 입으로만 부패 척결을 외칠 것인가. 제도 정비를 서두르고 확실한 실천 의지를 다져야 할 때다.

공직 부정부패 척결의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재산 형성과정에 대한 철저한 감시에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한때 제기됐던 감사원의 공직 재산 심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와 같은 성실신고 심사는 하나마나다. 감사원이 적절한 규모 내에서 순환 심사를 한다면 부정사례 적발은 물론이고 예방적 효과도 클 것이다.

필요하다면 금융계좌 추적권 등 권한을 줘 제대로 된 조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공직자들이 정말 긴장하고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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