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의 나라' 미국] 총기사고 사회적 손실 年 1천弗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미국에서 최근 잇따르고 있는 총기사고는 총의 천국으로 통하는 미국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미 언론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자유 만능주의에 젖은 보수주의자들이 총기소지도 자유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고, 총기업자들과 결탁한 정치권이 규제법안 제정을 등한시해 미국 사회가 총기사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범죄예방단체(VPC)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해 약 4천4백만명이 총기에 의한 생명의 위협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총기 범죄자의 대상 연령도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14세 미만의 총기범죄가 유럽국가에 비해 1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전역에서 1997~98년 총기 관련 사고로 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수도 3백41명이나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총기 관련 사고로 인한 사회적 손실 액수도 천문학적이다. VPC는 미 사회가 총기사고로 인해 지불하는 연간 피해액이 2백4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인명 피해만 16억달러에 이르며 재산피해 14억달러, 생산성 저하로 인한 피해액수도 1백70억달러 가량 된다 여기에 총기사고를 당한 가족들의 고통과 국민들의 삶의 질 저하문제까지 감안하면 피해액수는 1천1백20억달러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피해액을 총기생산업체연합(NRA)이 지불해야 한다며 법원에 소송을 내는 주정부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애틀랜타.조지아주 등이 번번이 패소했다.

NR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는 다른 20개주도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헌법에서 성인의 자기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총기소유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기규제에 대한 법안을 제정해야 할 정치권도 국민들의 여망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NRA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NRA는 총기규제법이 총기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정치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29일 미시간주에서 발생한 초등학생에 의한 급우 살해사건은 한창 진행중인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도 주요 이슈로 등장했지만 총기규제법안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한 후보는 민주당 앨 고어 정도다.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공화당 주자들도 필요성을 인정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법안의 제정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올해 연두교서에서 '안전한 사회와 안전한 학교' 를 주장하며 총기규제법안을 제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장정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