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손 벌리는 유권자들…정치 초년생은 괴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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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월 총선에 도전하는 여야 정치 초년생들이 선거 브로커와 일부 타락 유권자들의 등쌀로 괴롭다. 정치판 생리에 어둡고, 얼굴 알리기가 급하다는 약점을 이용한 각종 요구에 시달리다 못해 애써 따낸 공천을 반납하는 일도 벌어진다.

◇ 손벌리기〓서울 성동의 민주당 공천자 임종석(任鐘晳)씨에게 최근 경쟁자측의 한 운동원이 "조직을 통째 넘기겠다" 며 향응과 수천만원대의 자금을 요구해왔다.

"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 는 任씨는 "몇 번 친목모임에 불려나가 보니 대부분 참석자들이 같은 사람들이더라" 고 혀를 찼다.

대전 유성의 자민련 이창섭(李昌燮)씨도 "1백표 몰아줄테니 얼마 주겠느냐" "찍어줄테니 회식비 30만원 내라" 는 등의 전화를 매일 3~4통씩 받고 있다고 했다. 매번 거절하다보니 선거캠프 안에서조차 "남들은 다 하는데 외면만 할거냐" 는 불만이 크다는 얘기다.

사정은 비슷해 미스서울 출신의 서울 동대문갑 한승민(韓承珉)씨도 " '50여명이 모여있으니 나와달라' 는 등의 전화가 많아 고민 중" 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갑의 민주당 이승엽(李承燁)위원장은 아예 역(逆)전략을 세웠다. 지역구의 당원집을 찾아 오히려 저녁식사를 '대접' 받기 시작한 것. "돈없어 밥을 못산다" 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

◇ 공천 반납〓이런 실정에 환멸을 느껴 출마를 포기하는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노원갑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던 윤방부(尹邦夫)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이 대표적. 지난달 24일 공천을 반납한 그는 "온갖 선거브로커들이 이 사람은 얼마, 저 사람은 얼마씩 주면 당선이 문제없다며 몰려들어 환멸을 느꼈다" 고 말했다. "출마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는 협박전화에도 시달렸다는 전언이다.

민주당의 서울 강남을 공천자였던 민병철(閔丙哲)씨도 "뚜렷한 목표의식과 준비 없이 정치에 뛰어들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며 28일 공천을 반납했다. 그에겐 기존 지구당 조직의 반발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29일까지 공천을 반납한 사람은 5명. 이들에겐 당선 가능성이 작다는 근본적인 이유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못볼 꼴을 당했다" 고 말한다.

민주당 정범구(鄭範九.고양 일산갑)위원장은 "시민단체가 차라리 유권자 계몽운동을 펼쳐야 할 때" 라고 했다.

최훈.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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