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러다이트족 등장…인터넷 세상 부적응 부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올해 초부터 도입된 전자결재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결재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후배사원의 도움을 받는 Y건설회사 고참과장 B씨(39)도 신 러다이트족(新Luddite族)으로 불린다.

'사이버(cyber)'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이회사 P이사(50)는 학원까지 다니며 업무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에 겨우 적응했지만 사원들 사이에선 B과장과 같은 범주로 꼽힌다.

대기업 H사의 K부장(41)은 며칠전 회식자리에서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부하직원 몇몇을 비판했다가 '신 러다이트족' 이란 별명을 얻었다.

"전자상거래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정부정책은 결국 동네 구멍가게와 자동차 판매사원.보험설계사 등의 일자리를 빼앗아 실업을 늘리게 될 것" 이라는 평소 소신(?)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위해 컴퓨터를 때려부수고 싶다" 고까지 비약했던 것.

29일 삼성경제연구소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K부장처럼 디지털 혁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를 거부하는 특성을 가진 부류를 신 러다이트족이라고 명명했다.

18세기 산업혁명기에 기계가 널리 보급되면서 노동자들이 실업위기에 처하자 기계를 부수는 등 변혁에 저항했던 '러다이트 운동' 을 빗댄 말이다.

신 러다이트족은 ▶ '차라리 모르고 살겠다' 는 식의 컴맹과 넷맹▶컴퓨터.인터넷으로 기득권을 빼앗길까 의도적으로 정보화를 방해하는 경우▶디지털 혁명이 현실공간상의 공동체를 깨뜨리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와해시킬 것이라 주장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식 조직문화를 선호하는 40대 이상의 직장인에게 많이 나타나며 이들에게 20~30대 벤처기업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양식은 종종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할수록 '소익부(少益富)노익빈(老益貧)' 현상이 심화될 것" 이라며 "신 러다이트족은 디지털 혁명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귄위적 위계질서를 고집하기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아크로폴리스형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 조언했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