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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할인점들 '한국화' 잰걸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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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까르푸.월마트 등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할인점들이 한국 실정에 맞추는 현지화를 서두르고 있다. 그동안 고집하던 본사 규정 지키기에서 벗어나 '토종 할인점' 따라잡기에 나섰다.

물건 값을 계산할 때 신용카드를 받고 상품을 낱개로도 팔고 있다. 매장에 안내직원을 배치하는가 하면 먹거리 코너도 새로 마련했다.

이 모두가 불과 몇달 전만 해도 외국계 할인점에서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월마트는 상자 단위로만 판매해온 소주를 낱개로도 판다. 스낵은 서너봉지를 하나로 묶어 묶음단위로만 팔았으나 요즘은 낱개 판매가 전체의 80%로 더 많다. 50개 들이 상자로만 팔던 참치는 서너개 묶음으로 나눠 팔고 있다.

월마트는 배추.무.오이.파.고추 등 채소류를 깔끔하게 다듬어 랩으로 싸거나 상자에 담아 파는 '소분(小分)판매' 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매장의 절반을 야채에 흙이 묻은 상태로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벌크' 로 바꿨다. 국내 소비자들이 벌크 상태를 더 좋아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마트는 오래 전부터 벌크판매가 대부분이며 소분판매는 20%도 채 안된다. E마트 관계자는 "외국에선 다듬고 포장한 상품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줘 잘 팔릴 지 모르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비싸다는 선입견을 갖는 것 같다" 며 "벌크 상태가 신선하고 값이 싸다는 인식 때문에 더 인기" 라고 말했다.

까르푸는 최근 매장 곳곳에 직원을 배치했다. E마트 등 국내 할인점은 매장에 직원이 상주하지만 외국계는 그동안 직원이 계산대에만 근무했었다.

까르푸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은 판매직원과 얼굴을 맞댄 상태에서 물건 사기를 좋아한다" 며 "매장에 직원이 없으면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비용부담을 감수하고 직원을 배치했다" 고 말했다.

까르푸 일산점의 경우 가전제품 매장에 5~6명, 생활용품.의류매장에 3~4명의 직원을 배치해 '대면(對面)판매' 를 강화했다. 담당자가 없으면 워키토키로 찾는 등 현장 서비스에 열심이다.

월마트는 그동안 거부했던 신용카드 결제를 지난해 10월부터 수용했다. 국내 할인점은 1994년부터 신용카드를 받아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계 할인점이 한국적인 현실에 적응하기 보다 본사의 판매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많았다" 며 "작년 하반기부터 국내 소비자의 미묘한 소비심리와 구매행태를 상품선정이나 매장진열 등에 반영하고 있다" 고 말했다.

외국계 할인점에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선 것도 최근 일이다. E마트를 비롯한 국내 할인점에는 족발가게까지 있을 정도로 먹거리 코너가 다양한 것과 대조적이다.

까르푸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들은 시골장터 분위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며 "한국인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음식스낵 코너를 마련했다" 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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