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남준의 구겐하임 '점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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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白南準)씨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11일 '백남준의 세계' 라는 개인 전시회를 화제 속에 개막했다.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1차 회고전을 치른 바 있어 이번의 구겐하임전은 그의 두번째 회고전이 되는 셈이다.

세계 현대미술의 메카라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초대를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기해야 할 일대 이벤트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후안 미로.클레.뒤상.자코메티 등 현대미술사를 빛낸 세계적 거장들이 거쳐간 유서깊은 전시장이다.

이런 전통의 구겐하임이 5년이란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새 밀레니엄의 첫 기획전으로 白씨를 초대했다는 것은 보통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아니다.

거기에다 뉴욕 현지의 언론들은 이번 전시회를 '백남준의 구겐하임 점령' 등으로 보도하며 엄청난 반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96년 중풍으로 쓰러진 뒤 거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白씨가 자신의 후기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신작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적 변조' 란 제목의 이 작품은 '시대의 변화와 공간을 뛰어넘는 정보의 동시적 공유' 라는 메시지를 띤 작품으로 레이저 광(光)을 주 소재로 하고 있다.

TV를 이용한 비디오 예술에서 앞으로는 레이저를 대안으로 하는 새로운 하이테크 예술을 개척하겠다는 선언이다.

白씨의 구겐하임 전시는 예술을 향한 선구자적 실험정신과 도전으로 전 세계가 인정하는 독자의 예술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었던 한 거장의 승리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전시장에 나와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외쳤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가 白씨 개인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한국 현대미술, 한국 출신 예술가들의 재능이 국제무대에서 꽃필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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