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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찬한 ‘세종시 모델’ 말레이시아 신행정도시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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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말레이시아의 신행정도시 푸트라자야 컨벤션 센터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주거 시설 분양률이 당초 계획의 25.6%에 그치는 차질을 빚고 있다. [푸트라자야=배명복 순회특파원]

“푸트라자야 신행정도시는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다.”

2005년 12월 말레이시아를 국빈 방문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푸트라자야를 둘러보고 밝힌 소감이다. 그는 “도시를 건설하며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기술과 문화·환경·생활을 위한 편의시설을 전부 다 배치해 놓은 것을 보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극찬했다.

세종시 논란 속에 실제로 와서 본 푸트라자야는 “와우” 하는 탄성이 나올 만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여의도 면적의 80배에 달하는 녹색 대지 위에 첨단과 전통이 어우러진 초현대식 건물과 각종 조형물이 세련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인텔리전트 정원 도시(Intelligent Garden City)’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인공호수와 습지, 공원이다. 도시 어디를 가나 현대적 쾌적함과 공간적 여유가 느껴진다. 6800달러라는 말레이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숫자 장난 같아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다녀간 방문단만 100팀은 넘을 겁니다.” 13일 기자와 만난 푸트라자야 관리청의 아지즈 부청장은 “노 전 대통령이 다녀간 이후 푸트라자야는 한국의 신행정도시 관계자들의 필수 벤치마킹 코스가 됐다”며 웃었다. 중앙 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 공무원들과 정치인, 학자, 시민단체 등에서 온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연방의 신행정도시로 건설된 푸트라자야는 완공 목표 시점을 1년 앞둔 지금, 정부 부처 이전율 기준으로 81%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이전 대상인 21개 연방정부 부처 중 총리실 등 17개가 옮겨왔다. 하지만 정부 부처를 제외한 다른 부문은 목표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상업 시설은 11.3%, 주거 시설은 25.6%가 분양되는 데 그쳤다. 완공 시점을 기준으로 상주 인구 32만 명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 입주 인구는 공무원 및 가족 6만 명을 포함해 7만 명뿐이다. 그래서 낮에는 그런 대로 도시 같지만 밤이 되면 유동인구가 없어 썰렁하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와 푸트라자야의 거리는 25㎞. 서울 도심에서 과천 정도 거리다. 자동차로 30~40분 걸린다. 상업·문화·교육시설이 아직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터에 굳이 가족을 데리고 이사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도시 설계만 보면 푸트라자야는 분명 우리가 참고할 대상이다. 100% 말레이시아 자체 기술에 의해 설계와 시공이 이뤄졌다. 역사에 남을 문화유산을 짓는다는 각오로 100년 앞을 내다보고 도시 설계를 했고, 건물 하나하나에 이슬람 양식의 독특한 조형미와 공간미를 가미했다. 생태·환경·녹색 개념에도 충실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나머지는 세종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푸트라자야는 지방 균형발전 차원이 아니라 수도권 종합발전 계획 차원에서 건설됐다.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모하맛 마하티르 전 총리는 말레이시아를 21세기 동남아 최고의 첨단 발전기지로 만든다는 구상 아래 쿠알라룸푸르 도심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잇는 폭 15㎞, 길이 50㎞의 땅을 ‘멀티미디어 수퍼 코리도(Multimedia Super Corridor)’로 지정했다. 그리고 도심과 공항의 중간 지점에 신행정도시를 지어 연방정부의 행정기능을 하나로 모은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족 기능 보완을 위해 푸트라자야와 붙어 있는 지역에 사이버자야(Cyberjaya)라는 첨단기업도시까지 병행 건설했다.

아지즈 부청장은 “신행정도시는 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신행정도시를 구상한 것은 총리 취임 직후인 1981년이었다. 그때부터 충분한 조사와 검토 과정을 거쳐 94년 최종안을 확정했고, 2010년을 완공 목표 연도로 잡았다. 30년을 본 셈이다.

정치적 동력도 중요하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정치적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22년간 장기 집권한 마하티르의 정치적 리더십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2003년 그의 퇴임과 무관치 않다.

푸트라자야(말레이시아)=배명복 순회특파원

◆푸트라자야(Putrajaya)=2020년까지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마하티르 전 총리의 ‘비전2020’ 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된 말레이시아 연방의 신행정도시. 초대 총리 이름(푸트라)과 도시명에 붙는 어미(자야)에서 유래. 쿠알라룸푸르 도심과 45㎞ 떨어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중간 지점에 위치. 수도권 기능 강화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경쟁력을 높이는 국가적 프로젝트로 1996년 착공. 24개 연방 행정부처 중 국방·건설·통상산업부를 제외한 21개 부처가 이전 예정. 현재 총리실, 외교부 등 17개 부처 이전 완료. 연방최고법원도 이전. 국회는 쿠알라룸푸르에 존치. 총면적 4931ha(1494만 평). 중심지역과 주변지역으로 나눠 총 20개 지구로 구성. 전체의 23%를 차지하는 중심지역에는 정부지구, 상업지구, 스포츠·휴양지구, 시민문화지구 등이 들어서고, 주변지역에는 주거지구, 외교단지, 학교, 병원, 공원 등이 들어선다. 총 6만4000호의 주택 중 55%를 공무원에게 분양 예정. 현재까지 80억 달러(약 10조원)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들었을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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