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세상보기] 어떤 귀국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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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놈의 불개미로도 좋으리라. 한 놈의 비루먹은 노새로도 좋으리라. 제가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지난 1년 남짓을 보내고 나도 그렇듯이 돌아왔다.

때마침 겨울풍경은 안성맞춤으로 착 가라앉아 있었고 눈길 닿는 데마다 여기저기 휑뎅그렁 빈 들녘이었다.

내 심사도 그런 풍경의 표면에 따라 능히 적적해지게 마련이었다. 한동안은 들어야 할 소리도 없고 들려줄 소리도 없을 것만 같았다. 모처럼 그런 허심의 감회가 좋아졌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내가 돌아온 곳은 즉각 그따위 수작 어림없다는 듯 '동란' 그것이었다. 감히 말하건대 내 조국의 이같은 햇살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조악하게 건설적이다.

늘 불타는 집이고 서로 피를 흘리는 곳이었다. 그런 중에 무엇 하나 제대로 놓일 자리에 놓인 것이 없는 듯한 세월이었고 무엇 하나 제대로 청산된 역사의 경험이 없는 것만 같았다.

켜켜이 쌓인 시대의 영구미제들에 질세라 당장 눈 앞이 시끌덤벙하고 살벌하고 거칠기 그지없다. 거리에서도 서로 어깨를 부딪혀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농사 짓던 시절의 옛 두레는 고사하고 어제오늘 가장 많이 들리던 공동체라는 말은 세상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함께 사는 관계이기보다 너무나 경쟁관계로 노출돼 있다. 아니 경쟁이 아니라 적대 그것인지 모른다. 이런 세상의 막 가는 판국에 굳이 현실정치 그것 하나만 떼어서 질타한들 얼마나 옳겠는가.

한마디 내뱉는다면 우선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을 몽땅 의사당 본회의장에 몰아넣고 문에 못질을 해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을 본떴다는 볼품없는 돔으로 된 그 의사당을 서로 삿대질하고 멱살잡이하는 수용소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런 사정을 두고 더이상 그 천민 정치를 놔둘 수 없다 해서 시민들의 실천적 각성이 집결되고 있어 그 파장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러는 한편으로 벤처 만능의 시대가 되어 기존의 성장기업 따위는 단숨에 뛰어넘을 것 같은 모험주의에 차 있다. 한 지방대 학부 2학년생이 어엿이 사장이 되는 때다.

증권시장은 일확천금과 수많은 파산들로 온전한 심장을 간수하기 어렵게 되고 인터넷은 이제까지의 삶과 문화의 고전적 의미를 송두리째 무일푼으로 만들 추세다. 정보의 잔인한 양산은 결코 정신이나 영혼의 이웃이 아니다.

사이버공간은 현실의 존엄성을 좌우하고 디지털이 인류의 숭고한 행위를 상당부분 무효화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이나 다른 지역보다 우리가 더 급성모방적이고 더 감염적이다. 밀레니엄이라는 말도 우리만큼 많은 혓바닥으로 말하는 곳도 없을 지경이다.

내가 이 현상에서 희망 대신 절망을 본다는 게 지나친 것일까. 어디 그것만인가. 도시든 농촌이든 그 많은 쓰레기더미야말로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어디 산야의 쓰레기만인가. 사람들의 마음도 쓰레기로 채워져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도 싱가포르처럼 담배꽁초 하나에 중벌을 내려 세계에서 가장 청결한 도시를 만들어 낼 수 없을까.

오늘의 정치도 이 지경에 이른 동기는 국민에게 있고 이 지경의 피해도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여야 정치 그것만이 아니라 전국민적 개량 없이는 내일이 없다.

오랜 부패와 부실, 그리고 허황된 자기과시 따위의 어둠으로부터 어떤 여명 없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높은 우월성을 한껏 꽃피우지 못하고 말지 모른다.

어쩌다 누가 국제무대에서 한때 날리는 영광으로 덩달아 들뜰 일이 아니다. 국민 각자의 이름 있는 분신들 하나하나가 인간의 엄중한 성실 혹은 진실을 새로 구현하는 처절한 전환의 힘을 찾아내야겠다.

아 단 하루만이라도, 1주일만이라도 멋진 나라에서 살고 싶다.

고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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