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대 황태산지 진부령 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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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이른 아침 황태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방수복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명태를 씻어 '덕' 이라 불리는 나무틀에 걸 때 튄 물이 영하 15도의 추위에 얼어 붙었기 때문이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모닥불을 쬐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갔더니 통성명도 하기 전에 얼큰한 두부찌개에 소주부터 권한다.

"올해처럼 날씨가 추워야 좋은 황태가 나오지요. 그리고, 인심좋은 덕장의 황태가 맛이 더 좋답니다. "

국내 최대의 황태산지 진부령 황태덕장(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는 지금 황태가 '익어가고' 있다.

황태 만들기는 11월말 말뚝을 세우고 덕을 짜면서 시작된다. 12월말부터 명태를 널고,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거듭하면 4월께 살이 부드럽고 노릇노릇한 황태가 된다.

용대리 황태전문식당의 찜.구이.탕은 대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각별한 맛이 있다. 거기에 반했음인지 진부령 식당(0365-462-1877)에는 '천하일미로세-탤런트 장항선' '황태국이 제일 맛있는 집-조류학자 윤무부' 등 이곳을 찾았던 유명인사들의 메모가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황태는 원래 원산의 특산물. 6.25전쟁 직후 원산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겨울이 길고 눈이 많으며 바람이 거센 강원 북부의 용대리.횡계리(평창군).거진항(고성군)에 정착하면서 황태산업도 자리를 잡았다.

용대리 황태덕장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용대리에 하나뿐이던 덕장은 60년대 중반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늘어났다.

겨우내 추운 덕장에서 일하고 일당을 챙겼던 마을 사람들은 황태철이 끝나는 5월이면 설악산으로 들어가 약초와 산나물을 캐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70년대말부터 주민들도 직접 황태 덕장을 만들어 지금은 10여개의 덕장이 운영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서는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황태 전문식당이 들어서 지금은 식당촌을 형성하고 있다.

황태는 동지때 동해 연안에서 잡은 '동지태' 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요즘은 연안에서 명태가 거의 잡히지 않아 원양 명태를 쓰기 때문에 동지태를 맛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좋은 황태가 나오려면 날씨가 추워야 하지만 눈도 많이 내려야 한다. 형제덕장 관리인 이종남(49)씨는 "날씨가 따뜻하면 살이 딱딱하고 짙은 갈색을 띈 '먹태' 가 된다" 고 설명한다.

특히 걸어놓은 명태의 벌린 입으로 눈이 들어가 얼었다 녹았다해야 겉에 골이 패지 않고 마치 찐빵처럼 부풀어 좋은 황태가 된다. 올해는 날씨가 예년에 비해 추워 전반적으로 좋은 황태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용대리를 찾았을 때 황태요리와 더불어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마가목 열매로 담근 '마가목주' 다.

주민들은 "마가목으로 만든 지팡이를 사용하면 아픈 허리가 펴질 정도로 신통한 효험이 있다" 고 말한다. 마가목은 군락을 이루며 열매는 3년에 한번 열린다.

마가목주는 식당에서 팔기도 하지만 주인과 정담을 나누다보면 몇잔쯤 얻어 마실 수도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용대리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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