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아들낳는 시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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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풍속과 신앙은 단군(檀君)신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짐작할 만하다.

웅녀(熊女)가 신단수(神壇樹) 아래에서 오랫동안 치성을 드린 끝에 단군을 낳았다는 설화가 그것이다.

뒤를 이어 북부여 금와왕(金蛙王)과 가락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탄생설화들도 기자(祈子)신앙의 유형을 보여준다.

그런 설화들에 뿌리를 둔 민간사회의 기자 풍속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발전한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앞의 설화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초월적인 존재나 또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에 치성을 드리는 유형이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면 그 유형은 수백가지를 헤아릴 수 있

게 된다.

특정한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몸에 숨겨두는 유형, 남녀의 성기(性器) 모양을 한 돌이나 나무에다 출산 모습을 재현하는 행위, 여러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어 그 공덕으로 아들을 얻고자 하는 유형,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유형 따위로 대표될 수 있다.

심지어 임신한 후의 성별을 바꾸는 방법까지 나돌았다.

물론 그 대부분이 과학적 근거는 없다.

한데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마시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는 풍습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

부모가 섭취하는 음식물이 아기의 성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수탉이나 황소의 생식기, 땅거미나 달걀 따위를 먹어 효험을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어떤 연관성이 있지는 않을는지.

어떤 의학자는 임신하기 전의 부부를 대상으로 식이요법을 시행한 결과 아들을 낳는 데 약 88%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주장한 일도 있다.

하지만 아들을 낳거나 딸을 낳을 확률이 각각 50% 안팎임을 감안한다면 그 성공률이란 것도 대수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아들을 얻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한 온갖 사술(詐術)이 판을 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의술이 더욱 발달해 언젠가는 아들과 딸을 원하는 대로 낳을 수 있는 때가 올는지는 알 수 없지만 1백% 보장한다는 장담은 아직까지는 헛소리일 수밖에 없다.

1천3백여명의 주부를 상대로 아들 낳는 방법을 시술해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한 산부인과 의사에 대해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사기죄를 인정, 원심을 확정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모두가 하늘의 섭리라는 점에서 보자면 인위적으로 성별을 결정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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