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뮤지컬 '아보스' 12일부터 문예회관서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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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진정한 사랑은 생명과도 바꾸지 마세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 그대 인생도 사랑도 오직 하나…." 단순한 사랑타령이 아니다. 18세 소녀가 36년 동안 밤마다 촛불을 켜고 한 남자를 기다리며 부른 순결한 노래다. 그것도 훨씬 나이가 많은 40세의 중년 남성을 그리워 한다. 12일부터 문예회관 대극장에 오르는 록 뮤지컬 '아보스'에서 여주인공 콘치타가 부르는 '사랑의 테마'다 .

'아보스'는 볼거리 위주의 브로드웨이식 '관람형' 뮤지컬과 색깔이 전혀 다른 러시아식 '사색형' 뮤지컬. 세밀한 심리 묘사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1981년 초연 이래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뮤지컬' 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언뜻 하이틴 로맨스 같은 느낌도 주지만 '아보스' 는 대단히 사회적이다. 내용이 반체제적이라는 이유로 80년 러시아에선 공연이 금지됐다가 81년 초연됐다.

이 작품의 소재는 1800년대 러시아에서 일어난 실화. 전제군주의 폭정에 시달리던 러시아 민중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레자노프가 구원의 땅을 찾아 나선다.

그가 도착한 곳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그는 여기서 스페인 총독의 딸 콘치타를 사랑하게 되나 양국의 종교차이로 결실을 맺지 못한다.

레자노프는 귀국하는 배 위에서 사망하고 이를 모른채 그를 기다리던 콘치타는 36년 후에야 미국인을 통해 그의 죽음 소식을 듣게된다는 슬픈 얘기다. 80년대초 자본주의 격랑에 휩쓸려 극도의 혼란을 겪었던 러시아인의 마음을 울렸다.

반면 이번 공연은 러시아 역사를 과감하게 생략했다. 시대를 지구 종말이 가까운 미래의 어느날로 옮겨 놓았다.

나날이 황폐해지는 지구를 보며 고뇌하던 레자노프가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으려고 우주 항해에 나선다. '아보스' 는 이들이 탄 우주선의 이름. SF영화 같은 상상력을 덧씌웠다.

레자노프가 지구 제독의 딸 콘치타를 만나는 건 원작과 같다. 이후 새로운 별을 향한 끝없는 항해를 주장하는 부하들과 지구에 남아 그를 기다리는 콘치타 사이에서 갈등하는 레자노프의 모습이 부각된다. 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며 사랑의 실체를 묻는 것이다.

유토피아란 사회든 개인이든 결국 희망의 불꽃을 태우는 기다림에 있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전한다.

레자노프역은 '레미제라블' '철안붓다' 등에 출연한 이용근이, 콘치타역은 오디션을 통과한 신인 이유진이 맡았다.

주제에 걸맞게 음악 또한 장엄하다. 당초 러시아에선 뮤지컬보다 오페라에 가깝게 작품을 구상해 여러 장르의 클래식 선율이 깔려 있다.

민중의 저항을 담는다는 취지에서 미국의 록음악을 접목시켜 활달한 무대가 기대된다. 드라마 '모래시계' '백야' 등을 통해 익숙해진 러시아 민요가락을 감상하는 기회도 된다.

남녀의 화음이 아름다운 성가곡 '알렐루야' , 세 옥타브를 소화해야 하는 레자노프의 주제곡 등 20여곡을 열창한다.

연기자.제작진 등이 소액주주로 참여해 수익을 나눠 갖는 벤처 뮤지컬이라는 점도 특이사항. 외부 투자가도 다수 유치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빠듯한 제작비 탓에 얼마나 원작의 감동을 살려낼 지는 미지수다. 제작진은 높아진 국내 뮤지컬 관객의 수준을 고려해 외형보다 내용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오페라를 공부한 양혁철이 연출을 맡았다.

평론가에서 제작자로 변신한 이혜경 교수(국민대)는 "내면에 충실한 연기와 이미지가 풍부한 무대장치로 뮤지컬의 또 다른 맛을 보여주겠다" 고 말한다.

공연은 23일까지. 오후 7시30분, 수 오후 3시 추가, 토.일 오후 3시.6시. 02-910-4387, 02-707-1133.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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