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뉴얼의 추진력, 액설로드의 머리, 재럿의 조정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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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호 05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웨스트 윙(West Wing)에서 일한다. 웨스트 윙은 주거 공간인 관저(Residence)의 서편에 있다. 그 반대편의 이스트 윙(East Wing)은 대통령 부인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은 계란의 타원형을 닮았기 때문에 ‘오벌 오피스(Oval Office)로 불린다. 핵심 참모들은 웨스트 윙의 1, 2층과 지하에 있는 사무실에서 일한다. 오바마의 일정과 메시지, 주요 정책은 이들의 손을 거쳐 나온다. 참모가 지닌 권력의 크기가 대통령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것은 청와대 뿐 아니라 백악관에서도 통한다.

백악관 웨스트 윙, 누가 오바마를 움직이나

시카고 출신 3인이 권력의 핵
오바마의 비서실장은 유대인인 람 이매뉴얼(49)이다. 그는 매일 오전 7시30분 자신의 방에서 고위 참모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을 논의한다. 데이비드 액설로드(54) 선임고문, 피트 라우스(63) 선임고문, 로버트 기브스(38) 대변인 등이 고정 참석 멤버다. 이매뉴얼은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 출신으로, 이 지역에서 연방 하원의원(3선)을 지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갔을 때 선거자금 모금 책임을 맡아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클린턴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폴 송가스 당시 상원의원이 자금난으로 경선을 포기하면서 “이매뉴얼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매뉴얼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은 절반 정도 잘려 있다. 고교 시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고기 절단기에 손가락을 깊이 베였다. 그런데도 치료받지 않고 미시간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 세균에 감염됐고, 손가락 일부를 잘라 내야 했다.

그는 돌파력과 추진력이 강한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람보’다. 뉴욕 타임스는 “이매뉴얼은 오바마의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막강한 실력자로서 위상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오바마의 곁을 항상 지키며 개인비서 역할을 하는 레기 러브(28)를 제외할 경우 오바마의 집무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액설로드 고문이다. 그의 방은 오바마의 서재 바로 옆에 있다.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두뇌(brain)’로 불린다. 대선 때 오바마 바람을 일으켰던 “우린 할 수 있다(Yes, we can)”는 선거 구호는 그의 작품이다. 오바마는 대통령 선거일 저녁 시카고에서 승리연설을 하면서 액설로드의 이름을 거명하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유대인인 그는 이매뉴얼처럼 시카고 사단의 일원이다.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시카고대를 졸업한 다음 시카고에서 가장 큰 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그곳에서 정치 컨설팅 회사를 운영했다.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인 해럴드 워싱턴 등 여러 명의 흑인을 정계로 진출시켰다. 액설로드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국정의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다른 참모는 얼굴을 잘 노출하지 않지만 액설로드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자주 응하면서 오바마의 입장을 대변한다.

러브는 명문 듀크대 농구선수 출신이다. 고교·대학 시절 농구선수로 활약한 오바마가 농구를 즐길 때 항상 파트너로 뛴다. 러브는 오바마가 어딜 가든 수행한다. 대통령과의 전화 연결도 그의 몫이다.

얼굴 없는 실력자 피트 라우스
백악관에선 ‘큰 누이(big sister)’ 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웨스트 윙 2층에 자리잡고 있는 밸러리 재럿(53) 선임고문이다. 오바마가 시카고에 거주할 때 가장 먼저 사귄 사람이 재럿이다. 재럿은 91년 시카고 시장실 부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오바마의 부인 미셸을 시장 보좌역으로 채용했다. 재럿이 미셸에게 “함께 일하자”고 했을 때 미셸은 “약혼자인 오바마와 함께 만나 주면 시장실에서 일하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이후 오바마 부부와 재럿은 친구가 됐다. 오바마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재럿과 상의한다. ‘오바마 두뇌의 절반(the half of Obama’s brain)’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다. 재럿은 지난 대선 때 캠프 내 갈등을 해소하는데 탁월한 조정력을 발휘했다. 현재는 행정기관 간 업무 조정, 정부 홍보 등의 책임을 맡고 있다.

라우스 고문은 오바마가 상원의원에 당선된 다음 삼고초려로 모셨던 사람이다. 상원에서 의원 보좌 경력이 30년이 넘는 산증인이어서 ‘101번째 상원의원’이란 별명을 얻었던 인물로,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있을 때 비서실장을 지냈다. 라우스는 백악관과 의회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 절대 입을 열지 않고, 언론에 나타나는 법이 없어 ‘보이지 않는 남자(invisible man)’로 통한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는 기브스 대변인은 ‘버락 위스퍼러(Barack Whisperer·오바마의 영혼과 속삭이는 사람)’라고 불린다.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제목 ‘고스트(ghost) 위스퍼러’를 본뜬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건 기브스가 오바마의 생각을 잘 알고, 언론에 잘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쾌활하게 농담을 걸고, 종종 가십거리도 알려 준다. 그러나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해당 기자에게 서슴없이 소리치는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를 맡은 제임스 존스(65) 국가안보보좌관은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이다. 키가 1m93㎝인 그는 조지타운대(과학학부)에 다녔을 때 농구선수로 활약했다. 베트남전에 소대장으로 참전했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 사령관 등을 지냈다. 이라크전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집권 시절부터 “테러의 본산은 아프가니스탄이므로 군 전력을 이라크보다 아프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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