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소설 20대에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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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0년 넘게 잘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 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51.村上春樹)는 요즘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학생운동이 치열했던 1960년대말에 대학을 다닌 '전공투(全共鬪.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세대지만 학생운동을 '한심하다' (상실의 시대)고 표현한다.

한때 국내에서 외설서로 판금됐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에 이어 최근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 라는 요리관련 소설을 내놓아 거뜬히 1만부를 넘게 판 무라카미 류(48.村上龍). 그는 70년대초 일본의 허무주의.히피문화를 경험했으며, 한 때는 미국 뉴욕에서 살기도 한 영화감독.화가.DJ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발표한 소설 '키친(kitchen.부엌)' 이 한국에서도 1년만에 5만부 이상 팔리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36.吉本バナナ). '바나나는 어느 나라에서나 바나나' 라는 이유로 본명을 버리고 바나나를 필명으로 택한 작가다. 요시모토 류메이(隆明)라는 세계적인 철학자의 딸.

최근 '철도원' 이란 따뜻한 가족사랑 이야기로 베스트셀러 소설부문 1, 2위를 다투고 있는 아사다 지로(49.淺田次郞)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야쿠자가 됐던 인물이다.

이들이 바로 요즘 국내 20대 독자층을 사로잡고 있는 일본의 신세대 작가들이다. 우리 작가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한국의 20대와 궁합이 잘 맞다.

문화평론가 이재현씨는 "가장 중요한 배경은 한국의 20대는 적어도 40대 이상이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점이다" 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미 초등학생 시절에 일본 만화를 보고, 늦어도 중학생 때부터는 일본의 패션잡지인 '논노' . '앙앙' 을 보면서 직접 일본문화를 구입해 몸에 걸치고 다닌 세대라는 것. 이씨는 "한국의 20대가 원하는 소설은 역사나 철학, 또는 이데올로기가 무겁게 담긴 소설이 아니다.

이들에게 대중소설이나 순수문학 같은 구별도 무의미하다" 고 분석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와 같은 소설이 이들이 원하는 소설이라는 설명이다.

'상실의 시대' 는 80년대말부터 우리나라에 등장해 10년 넘게 일본문학의 씨를 뿌려온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은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적당한 거리를 둘 것' 을 다짐하며 사는 대학생이고, 여자 주인공은 '유서도, 짐작되는 동기도 없이' 자살한 남자 주인공 친구의 애인이다. 이들은 그냥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일본의 '고갸루(子+Girl.원조교제하는 여고생)' 족(族)으로 대표되는 '꿈이 없는 세대' 들의 원조격이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게는 구역질 나는 존재들일지 모르나, 90년대 이후를 살아온 한국의 20대들에게는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거나 자신이 그려보고 싶은 모습이 되는 셈이다.

무라카미 류의 폭력.섹스.마약이나 요리, 또는 바나나의 소녀적 분위기는 사실 하루키가 뿌려놓은 토양에서 피어난 소설쓰기의 다양한 맛들이다.

세종대 박유하 교수(일본문학)는 "이런 소재와 주제의 다양성이 신세대 독자들을 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 이라며 "우리 문학도 금기를 없애고 다양한 글쓰기를 모색해야한다" 고 말했다.

일본 신세대 작가들의 글에는 미국식 대중문화에 대한 그리움이 양념처럼 끼어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의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 은 비틀즈의 노래제목이다. 소설속에서 재즈와 록음악뿐 아니라 카섹스까지 미국 문화가 끊임없이 깔려있다.

와세다(早稻田)대 김응교 교수(비교문화론)는 일본을 통한 미국문화의 유입이라는 맥락에서 일본소설 붐을 평가했다.

"우리보다 먼저 미국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이 일본식으로 한바탕 소화해낸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배고파하는 시점에서 먹기 편하게 만들어 넘기고 있다" 는 분석이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문화강국이 어우러진 시너지가 한국의 신세대들을 사로잡고 있는 셈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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