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눈에 띈 '명단'관련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시민단체의 공천반대 명단에 관한 논란이 계속해 주목을 받은 한 주였다. 중앙일보 지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주일 내내 이 쟁점은 중앙일보 지면의 구석구석을 장식하며 깊이 있고 폭넓게 다뤄졌다.

그러나 각각의 기사내용, 그리고 그 기사들을 배치한 편집의 결과를 검토해보면 서로 다른 미묘한 입장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중앙일보 내부에서도 그만큼 이 쟁점은 민감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우선 중앙일보는 이 문제에 관해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려고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한국사회는 변혁 중' 기획물의 마지막 편이 실린 1일자 5면이다.

'지지론' '비판적 지지론' '비판론' 의 세가지 입장을 비교적 균형 있게 정리한 김창호 학술전문기자의 기사는 낙천운동의 파장을 독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기홍 교수의 기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2일자 중앙시평 '기로에 선 총선연대' 와 3일자 중앙포럼 '5단계 총선음모설' 은 서로 대립적이지만 동시에 보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독자들이 한국정치에 미치는 낙천운동의 파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중앙일보의 칼럼이 계속해서 이러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권위 있는 정론지라는 평가를 얻는데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낙천운동과 관련된 중앙일보의 사실 보도는 앞의 기획기사나 칼럼의 경우와 비교해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민운동 단체가 낙천운동을 하는 이유, 그리고 그에 따른 낙천대상자의 명단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지면을 차지하는데 반해, 낙천운동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항변은 독자들의 주목을 전혀 끌지 못하는 지면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3일자 사회면 하단에 실린 '확인하고 확인했다는 총선연대 2차 발표' 에 억울한 사정이 보도된 안동의 김길홍 전 의원의 경우다.

2일자 종합면 하단에 '총선연대 사무실서 다목적 단식' 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김상현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4일자 종합면의 2면과 5면 하단에 나눠 실린 '야, 총선연대 친여인사 명단공개' 와 '음모론 불지르기-야, 총선연대 간부 일부 국민회의 출신' 의 두 기사 역시 어쩔 수 없이 기사화는 했지만 독자들의 관심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가장 후미진 지면에 의도적인 제목을 달아 축소 편집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시민운동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야당과 공동여당의 주장,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일부 국민의 정서를 중앙일보가 억지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반대 운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사는 2일자 1면과 3면에 보도된 김행 전문기자의 '4.13 총선 여론조사' 다.

지역감정을 부추긴 후보를 낙천 및 낙선시키자는 시민운동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기본적으로는 지역구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여론조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연령별 지지정당의 차이 및 수도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혼전 양상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 중앙일보의 지면에서 가장 눈에 거슬린 보도는 1월 31일자 사회면의 H.O.T 관련 기사묶음이다.

H.O.T가 한.일 합작영화에서 주연을 맡게 된 사실과 중국에서 인기가 좋다는 사실이 왜 정론지의 사회면 머릿기사가 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중앙일보가 오락을 위한 스포츠 신문인가.

기사와 함께 게재된 사진 또한 사회면의 품위를 실추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사회면이 이래서는 안된다.

유석춘<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