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배상'판결 문제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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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 수사의 '감청 의혹' 을 제기한 사설(社說)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사 12명이 조선일보사와 담당 논설위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검사쪽 손을 들어주었다. 신문사측이 검사들에게 1억8천만원을 배상토록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금전적 배상뿐만 아니라 판결확정 후 사설과 같은 면에 정정보도문을 싣도록 간접강제까지 했다.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고 아직 상급심 판단이 남아 있어 이 판결에 대해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다.

그러나 판결 내용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사설도 사실 확인에 기초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사설은 논평이란 점에서 일반기사와 다른 점이 특징이다.

문제된 사설도 검찰 발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의혹' 을 제기한 것이어서 사실규명을 촉구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예컨대 '밀실공천은 안된다' 고 했을 때 꼭 밀실공천 현장을 입증해야 하는가.

이 사설의 주제는 수사기관의 도청이나 불법 감청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당위성 강조와 우려섞인 경고를 담고 있다. 수사팀을 고의적으로 비방한 대목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사설은 신문사의 공식 의견인데도 법인이나 발행인이 아닌 논설위원 개인에게 연대책임을 지운 것은 신문제작 메커니즘을 외면한 처사다.

지난해 법조비리 파동 이후 언론사 관련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한결 엄격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언론계 전체의 관심사다.

어떤 외압에도 언론이 결코 위축돼서는 안된다는 것은 기본원칙이다. 언론도 정도(正道)를 지켜야 하지만 법 집행기관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으로 언론기관을 상대로 법률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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