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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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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영부인의 소회는 그렇다 치고, 아닌 밤중에 길거리 간판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또 무슨 일인가.

도시인에게 간판이란 너무도 익숙한 사물이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초록빛에 둘러싸여 살고 섬사람들 눈 가는 곳마다 푸른 바다가 있듯, 도회지 사람 눈에는 콘크리트·철재·유리 건물과 더불어 온갖 간판이 늘 어른거린다.

외국에 몇 년쯤 머물다 귀국한 이들이 서울의 공항로에 접어들었을 때 한결같이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어마어마한 간판들’이다. 건물 외벽에는 벽면의 재질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간판들이 들어차 있고, 그것도 부족해 유리창까지 활용한다. 따지고 보면 그 많은 간판은 우리나라의 군소 자영업자들이 튼실하게 버티고 있다는 점을 웅변하는 것이어서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다행스러운 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그동안 서울의 간판들이 너무 심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선진국 사람들 입에서 좋은 이야기 좀 듣고 싶어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우리나라 도시들의 심미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여간해서 들을 수 없다. 여기에는 추해 보이는 간판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직하다.

역시 80년대 얘기다. 서울 종로5가의 한 약국은 주변의 모든 약국들을 압도할 만큼 튀는 간판을 새로 내걸었다. 그 간판은 짙푸른 바탕에 두꺼운 흰 고딕체 상호를 올린 것이었다. 그러자 언저리 약국들이 너도나도 거의 비슷한 것들로 간판을 통일시키게 됐다. 짙푸른 것 말고 빨간 바탕이 혼재됐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20년이 넘도록 서울의 간판들 중 태반이 파랗거나 빨간 바탕에 흰색의 고딕체 상호를 내걸게 됐다. 그 시각적 경험은 끔찍했다. 생경한 간판들의 바탕색으로 쓰인 붉거나 푸른색은 그야말로 아무런 뉘앙스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색깔이어서 강퍅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네 스산한 삶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의 추함이 어디 간판뿐일까. 회색빛 가로를 질주하는 승용차들은 택시와 자가용을 가릴 것 없이 무채색 일색이다. 도쿄 택시는 화사한 에나멜 톤인데, 서울은 택시들조차 회색빛이다. 일본인이 따라올 수 없는 청자의 비색을 창조한 우리 민족 아니었던가. 흰색이나 회색조 차들이 관리하기에 편하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이제 서울의 대기도 많이 정화되었으니 좀 색깔 있는 차를 타고 다니면 안 될까.

우리는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사소한 것들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거대한 담론들이 아니라 어쩌면 그런 사소한 것들이 아닐지. 우리의 정신과 감성이 황폐해지는 건 어쩌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온갖 무채색의 사물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무튼, 그 추한 색깔들 속에 수많은 음치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내지르듯 한 간판들에 치이다가 새로 가로를 정비한 삼선교 길을 지나면서 보게 된 예쁜 색깔들의 아담하고 정갈한 간판들에 갑자기 감동한 것이다. 옛날 그 영부인처럼 차에서 내려 껴안고 싶었다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서울의 간판들 중에는 여전히 1m가 넘는 형광등을 수십 개씩 집어넣은 과대증후군의 간판이 많다. 그런 와중에도 삼선교 지역처럼 시각 공해에서 벗어난 간판을 내거는 변화의 흐름은 자리 잡은 듯하다.

단어들 중에 어떤 것들은 그 비유적인 의미가 본래의 의미를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 간판이라는 단어는 그 대표 예일 듯싶다. ‘간판에 울다’라는 이 글의 제목에서 간판이라는 것이 실제 길거리의 간판이리라고 생각한 독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간판에 우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제목이 될 수도 있겠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 출신인지 따위가 사람들 이마에 붙은 간판이 될 터이다. 크고 요란한 간판들이 사라지고 다소곳한 간판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곧 헤게모니만을 추종해 온 우리 삶의 양태가 변화하는 징표라면 그보다 반가운 일이 또 있을까.

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