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스 체슬러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528쪽, 2만원
적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성’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주장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평화적이고 협조적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뉴욕시립대의 심리학·여성학 교수인 지은이에 따르면 이는 신화에 불과하다. 그는 21년 간에 걸쳐 여자 정신분석학자· 심리치료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터뷰를 한 끝에 이같은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
사실 ‘여자의 적은 여자다’란 말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특히 직장생활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뿐일까. 세계적으로 알려진 동화 ‘신데렐라’를 보자. 주인공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것은 계모와 이복자매들 아닌가. 지은이는 여기 주목했다. 그는 연구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자는 천사가 아니다. 반만 천사다. 나머지 반은 악마다. 그런데 그 악마가 주로 같은 여자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상의 폭력범죄 90%는 남자들이 저지른다. 그만큼 남자의 공격성은 극적이고 무섭다. 하지만 여자들도 남자 못지 않게 폭력적이다. 단지 어렸을 때부터 사회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내면화 했기에 드러나지 않고 간접적일 따름이다. 여성의 ‘공격’은 대부분 침묵, 따돌림 혹은 언어적 폭력 형태로 표출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권말에 나온다. 지은이는 1980년 UN에서 여성문제 컨설턴트로 일할 때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세계 페미니스트 총회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일을 털어 놓고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참석자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을 뿐 아니라 지은이의 ‘자매’ 한 사람은 외려 그 성폭행범에 맞서지 말자고 선동을 하더니만 종내에는 지은이의 일, 인적 네트워크를 가로챘다고 한다.
아픈 체험까지 털어놓은 지은이의 결론은 분명하다. 여성도 남자들처럼 다른 여자들에게보다는 같은 인종, 종족, 계급, 가족 등에 충정을 더 느낀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들보다 더 평화적이고 동정적이라는 ‘신화’를 믿지 말란다. 그래야 배신감이 줄어들 것이고 진정한 성평등을 향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단다. 페미니스트들은 불편해 하겠지만 세상을 있는 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될 책이지 싶다.
김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