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흠집내기가 목표인 인사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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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제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인사청문회 관련 보고서를 보면 낯이 뜨겁다. 그동안 막연하게 느껴온 문제점들이 미국의 인사청문회 사례와 비교해 보니 얼마나 잘못 진행되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여당 의원은 후보자를 비호하고 야당 의원은 비판 일색으로 진행되는 것도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은 후보자의 정책 중심으로 직무 수행능력 검증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한국에선 도덕성 검증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미래를 보는데 한국은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백악관이 후보자를 검증하는 데만 2~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철저히 검증한 자료를 제출하면 후보자의 과거는 서류를 보는 것으로 끝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청문회에서 도덕성 관련 질문은 클린턴 재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위법 사실이 있다면 고발하면 된다. 공직을 맡지 못할 정도의 잘못이 아닌데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개인의 병력(病歷)이나 가족 문제 등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생활까지 공개하는 건 인사청문회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 과거의 흠결을 찾아내는 데 매달려 정작 필요한 후보자의 비전과 정책 구상을 확인하는 데 소홀해서는 국민을 대신해 공복을 가리는 자세라 할 수 없다.

‘듣기’는 없고 ‘말하기’만 있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미국에선 후보자가 자신의 정책적 입장을 설명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의원이 얼마나 후보자를 호되게 추궁하는지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신 모욕과 윽박 지르기, 재탕 삼탕으로 이어진다. 청문회 스타의 추억 때문에 비리청문회와 인사청문회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청문(聽聞)이라면 말 그대로 후보자가 어떤 비전을 갖고 정책을 집행해 나갈지를 듣는 자리다. 후보자에게 답변할 기회도 주지 않는 청문회라면 할 이유가 없다.

후보자를 낙마시킨 걸 훈장으로 여기는 풍토도 문제다. 정말 문제가 있는 후보자라면 걸러 내는 게 청문회다. 하지만 정치적 라이벌이란 이유로 선정적인 공격으로 흠집을 내려는 식의 정략적 접근은 지양돼야 한다. 재산을 모은 과정보다 재산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인신공격을 하는 여론 선동으로 흐르지는 않았는지도 반성해야 한다.

미국에선 상원의 인준을 통과하지 못한 각료가 20세기를 통틀어 겨우 3명이라고 한다. 한국 인사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은 후보는 없다. 평소 야당 의원들이 존경하던 인물이 나서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관행에 젖어 있는 건 여건 야건 마찬가지다. 더 이상 인재는 죽이고 무능한 사람만 통과시키는 방식의 인사청문회는 곤란하다.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정말 좋은 인재를 가려낼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