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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beauty] 프랑스 ‘향기 마술사’, 올레 걸으며 한국의 향을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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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까이 향수만을 만들어 온 디올의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시(60)가 제주에 왔다. 새 향수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조향사인 드마시가 서귀포시 안덕면 ‘카멜리아 힐’을 둘러보며 ‘한국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크리스찬 디올 제공]

드마시는 제주의 자연을 모두 기억하려는 듯 끊임없이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지난달 말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를 둘러봤다. 남쪽 해안가를 따라 난 도보여행자들의 길 ‘올레’를 천천히 걸으며 꽃이며 나무, 풀, 바람, 물 등 제주의 자연을 직접 느꼈다. 특히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동백나무 정원인 ‘카멜리아 힐’에서는 처음 보는 몇 가지 식물에 큰 관심을 보였다.

털머위 은은한 꿀 냄새, 새로운 느낌

“털. 머. 위?” 또박또박 발음을 따라 하며 수첩에 털머위(우리나라와 중국ㆍ일본ㆍ대만 등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꽃을 그려 넣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였다. 사진을 찍었는데도 굳이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이 향을 기억해 내는 것은 향 자체만이 아닙니다. 어떤 순간의 기억을 각자 나름대로 머리 속에 각인하는 것이죠. 사진 속 꽃 형상과 내가 직접 그린 꽃잎의 모양이 비슷할 순 있지만 느낌은 다릅니다.”

그는 카멜리아 힐 곳곳에서 자라는 털머위를 볼 때마다 코를 갖다 대고 향을 맡았다.

“아직 한국을 많이 보진 못했기 때문에 ‘한국의 향은 뭐다’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털머위 향에서 은은하게 꿀 냄새가 나더라고요. 순간 ‘꿀 향기가 나는 향수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향에 대한 영감은 이렇게 얻어집니다.”

그는 조향사로서 영감을 얻는 원천이 단지 향만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인은 아시아의 라틴계’라는 말을 들었어요. 하하. 그만큼 열정적이란 뜻이었죠. 와 보니 실제로 사람들이 굉장히 밝고 호탕하게 웃네요. 어떤 일에 대해 뚜렷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듣던 대로예요. 설명하면, 이런 인상 전체가 ‘한국의 향’을 만들어 내죠.”

좋아하는 마늘, 일할 때는 못 먹어

그는 ‘향수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남부 그라스 출신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향, 향수와 함께 자랐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인상적이고 오래된 향은 재스민이다. “클럽에서 밤늦게까지 놀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곤 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재스민 꽃 냄새는 아주 상쾌했죠. 지금도 재스민 향을 맡으면 그날의 상쾌함이 떠오릅니다. 형체도 없는 향기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그게 후각과 향수의 장점이죠.”

오전 내내 동백꽃과 제주 토종의 ‘하귤’ 등 각종 식물의 향을 맡아본 뒤 점심 식사를 위해 근처 일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늘을 삼가는 그의 식습관 때문에 택한 메뉴다. 그는 주문할 때도 절대 마늘은 넣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내 고향 음식에는 마늘이 많이 들어갑니다. 당연히 많이 먹고 또 즐기죠.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먹지 않습니다. 마늘은 한 번 먹고 나면 2~3일 정도 내 몸에 그 향이 남아 있거든요. 당연히 후각이 떨어지고, 조향사로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죠.”

피부에서 풍기는 마늘 냄새라, 역시 조향사는 보통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 촉수가 뻗어 있었다.

“요즘도 매일 10가지 정도 향을 맞히는 연습을 합니다. 훈련을 통해서 후각을 발달시키는 거죠.”

향수는 과학과 상상력의 만남

그는 조향사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꾸준한 노력 외에 호기심과 겸손함을 꼽았다. 오전 내내 카멜리아 힐을 둘러보며 그가 보여준 모습은 호기심 많은 소년 같았다. 주변 풍경 모두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신 사진을 찍어댔고, 제주 토종 귤이 눈에 띌 때마다 향을 맡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여러 가지 채소를 유심히 살펴보며 냄새를 맡고 꼭꼭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관련 질문도 끝이 없었다. 그런데 조향사에게 필요한 ‘겸손의 미덕’이란 뭘까.

“후각은 원래 완벽한 게 아닙니다. ‘누구의 향수 또는 언제의 향기’라고 기억할 만큼 민감하긴 하지만 또 금방 둔해지기도 하죠. 조향사도 늘 완벽한 후각을 유지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자신의 코가 절대적이라는 자만심은 금물이죠.”

그는 끝으로 향수를 이렇게 정의했다.

“향수는 불안정한 균형이며 조화입니다. 향수 포뮬러(특정 향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료의 배합비 등을 규정한 공식)는 굉장히 엄격하고 과학적이며 분석적입니다. 반면에 향이란 매우 낭만적이면서도 쾌락주의적이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죠. 이 둘 사이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이뤄내는 게 바로 향수죠.”

제주=강승민 기자

프랑수아 드마시는

크리스찬 디올의 조향사. 1971년 조향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샤넬 등을 거쳐 2006년부터 디올 향수 전체를 책임지는 조향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지난해 여름 선보인 ‘미스 디올 셰리-블루밍 부케’는 국내 출시 석 달 만에 2만 개 이상 팔렸다.

드마시가 추천하는 겨울 향

향수를 선물하는 것은 꽃다발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 향수는 살아 있는 것이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며 음악의 선율처럼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향수는 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는데 크게는 이렇다. 꽃향이 퍼지는 ‘플로럴’, 인도·중동 등의 향을 담은 ‘오리엔탈’, 새콤한 ‘시트러스’, 향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아로마틱’, 나무 냄새가 나는 ‘우디’ 등 다섯 가지다.

겨울철이면 은은한 재스민 향기에 달맞이꽃 향도 나면서 약간 달큰한 나무 냄새가 풍기는 ‘샌달 우드’가 들어 있는 플로럴 계열 향수가 좋다. 샌달 우드가 당당한 여성을 표현한다면 재스민과 달맞이꽃은 우아함을 풍긴다. 겨울철 실내에선 시트러스처럼 튀는 향보다는 은은한 향이 더 알맞다.

남성에게는 우디 계열이 적당하다. 우디 종류는 향수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까지 부담 없이 소화할 만하다. 하루 종일 상큼한 향이 퍼지는 시트러스가 조금 가미된 우디 계열 향수가 겨울철 남성들에게 잘 어울린다. 이런 종류의 남성용 향수에 든 시트러스 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아 겨울철에도 좋다. ‘아틀라스 시더’로 불리는 삼나무 향이 여기에 더해지면 톡 쏘면서도 상쾌한 향이 나기 때문에 남성적인 매력을 더욱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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