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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계 새천년엔…] ② 물량주의 청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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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527년 인도에서 중국에 도착한 달마에게 열성적인 불교도였던 양무제(梁武帝)가 물었다. "짐은 즉위한 이래 수많은 절을 지어왔다. 어떤 공덕이 있는가?" "속세에나 필요한 덧없는 행위로 전혀 공덕이 될게 없다. "

도시에서는 계속 교회가 들어서고 있으며 산중 사찰에서도 불사(佛事)을 벌이고 있지않은 조용한 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세의 확장에 따라 집회장소를 새로 짓고 넓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종교 본연의 자세는 돌보지 않고 세계 최고, 한국 최대 등 물량주의로 치달으며 세속화한다면 문제다.

한국 교회의 대형화는 우리의 산업화 추세와 궤를 같이 한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 인구 집중이 도시의 교회를 점점 대형화 시켰으며 80년대초 도시인구과포화현상이 나타나면서 대형교회의 문제도 기독교계에서 지적되기 시작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총무 정진우목사는 "물량.성장 제일주의 경제개발 정책이 교회 자체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며 "이런 물신숭배 행태는 인간의 정신을 바로 이끌지 못하고 부와 권력등 세속화만 확대재생산 할 뿐" 이라 지적했다.

기업경영의 논리로 교회를 확장해 신도를 끌어모으는 '교회 산업' 으로 나가고 있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목회자뿐 아니라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신도들이 대형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몇몇 유력인사가 나가는 교회면 그들과 어떻게든 끈을 맺어보려는 신도들이 모여들고 또 수많은 신도들에 묻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복을 빌려는 세속화된 이기주의가 교회의 대형화를 부추기고 있다.

사찰도 끊임없이 규모를 넓히며 외양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불사를 대형으로 벌이면 벌일수록 신도들도 많이 찾는다. 또 불사를 잘 해야만 능력있는 승려로 인정받는 불교계 풍토도 문제다.

실천불교승가회 김봉준 사무국장은 "불사는 수행환경 조성과는 이율배반적이었다" 며 "지금까지의 사찰운영의 기본이 신도들의 시주로 불사를 일으키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운영의 소프트웨어를 개발, 신도들에게 주는 사찰로 나아가야할 것" 이라 밝힌다.

종교의 물량주의는 종교의 세속화를 낳는다. 성직자와 신도간의 영적.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종교 행위가 하나의 의식 자체로 끝나버리든지 종교의 기복적인 요소만 남게된다.

이제 사회도 대량 생산.소비의 산업화 시대를 넘어 소량 생산.소비와 개성을 강조하는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 종교도 소규모로 나갈수 밖에 없다.

이의용 교회문화연구소장은 "성장주의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다" 며 "성직자와 신도들이 종교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올때 대형화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 고 밝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는 최근 "신앙공동체가 대규모가 되면 인격적인 친교가 소원해져 신앙생활의 깊이가 얕아지고 복음화 의식도 부족해질 수 있다" 며 "서로 가족처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친교를 이룰 수 있는 규모의 신앙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종교계 내부에서도 이제 '속세에나 필요한 덧없는' 물량주의에서 벗어나 '규모의 종교학' 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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