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시민단체 후보감시 활동]미국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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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내에서 시민단체의 정치 참여를 둘러싸고 말도 많고 파문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선진국에선 오래 전부터 시민 참여 정치가 활성화돼 있다. 물론 객관적인 평가, 공정한 활동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정치활동을 두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 5일 미국 워싱턴DC 한복판의 내셔널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시민단체인 공익옹호센터(CPI)가 주최한 설명회에 주요 언론의 기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이어 찰스 루이스 CPI 소장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연단에 나타났다. "주지사 부시는 A사 회장으로부터, 부통령 고어는 기업인 B로부터…. " 서류뭉치는 바로 2000년 대선에 출마한 각 정당 주자들의 정치자금줄이었다.

루이스 소장은 설명회 말머리에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과 돈, 둘의 관계는 선거절차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 이날 설명회를 갖게 된 배경 설명이었다.

그는 이어 "이 자료는 우리 단체가 18개월동안 주요 대선 주자들의 돈줄과 이와 관련된 정치적 행적을 낱낱이 추적한 것" 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역시 워싱턴에선 에너지 관련 단체 연합이 대선 주자들의 에너지 정책에 관한 평가결과를 공표했다.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에너지 정책에 대해 각 후보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어떤 정책대안을 제시했는가를 조사해 점수를 매긴 것. 보고서 분량은 55쪽. 순위는 이랬다.

1위 민주당의 앨 고어, 2위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 이어 3, 4위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주자들의 가슴이 뜨끔한 순간이었다.

이처럼 미국 시민단체들의 정치 참여는 주로 정치인들에 대한 감시와 평가, 그리고 투명한 공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찬반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유권자들에게 제공, 투표에 의해 자연스럽게 부적격 정치인의 도태와 건전한 정치풍토의 조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같은 정치활동을 하는 시민단체의 수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특히 백악관 북쪽에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밀집해 있다.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규제가 전혀 없는데다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오히려 이들의 활동이 장려되는 분위기다.

단체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 CPI처럼 정치활동 전반에 간여하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에너지단체연합처럼 환경.교육.여성.노동.소비자보호 등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단체들의 활발한 정치참여 활동에도 불구, 미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으로 그다지 폭발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와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이 항상 조용하게 체질화돼 어우러지는 탓이다.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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