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한식 함포정치’의 셈법 정확히 인식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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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서해에서 북한경비정의 도발은 북한 국내정치와 대외정책 목표를 동시에 고려하는 셈법을 갖고 있다. 북한의 공세적 대남정책, 2차 핵실험으로 조성된 긴장된 남북관계, 북·미 관계가 대화국면으로 전환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누가 심리적으로 가장 당혹스러울 것인가? 북한 주민과 간부들일 것이다. “지도자는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믿는 북한 주민과 간부들은 대화국면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서 심리적으로 동요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북한 주민과 간부들의 심리적 동요를 차단할 정치적 전기를 만들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미 북한은 1차 정상회담을 앞둔 1999년과 부산아시안게임에 미녀 응원단을 보내기 직전인 2002년 6월에 각각 서해에서 군사적 도발을 해 긴장을 고조시킨 가운데 새로운 국면을 만든 전과가 있다. 당시 북한을 이끄는 지도집단이 여전히 지금의 북한을 이끄는 현실을 감안하면 ‘비슷한 방법’으로 국면전환에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적 차원에서 북한은 2차 핵실험 이후 그렇게 갈망하던 북·미 직접대화를 앞두고 있다. 김정일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만나서 북·미 관계 진전을 보아가며 6자회담에 참가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북한은 북·미 대화를 전후해 6자회담 참가를 결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2차 핵실험 후 다시는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북한 주민과 간부,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정치선언을 번복하고 미국과 직접대화에 나서는 북한체제 모습에 북한 간부들이 공개적으로 토를 달 수는 없겠지만 적잖게 당혹스러울 것이다. 북한체제는 이들에게 회담에 나서지만 절대 미국에 ‘비굴하게 대화하지 않겠다’는 기개를 보여야 할 절박한 사정에 있다.

북한은 서해에서 우리 경비정에 함포를 발사해 북한 주민들을 군사적으로 긴장시키고, 간부들에게 절대 기죽지 않고 미국을 상대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더 많은 군함을 동원, 더 큰 화력으로 우리 해군에 많은 피해를 강요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북한해군은 1, 2차 연평해전을 통해 남북한 해군 경비정의 실전능력을 비교한 교훈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피해를 강요하는 도발은 더 이상 한국 해군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북한군 간부 경력이 있는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99년 1차 연평해전에서 북한 지도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규모 충돌이 아닌 작은 규모의 도발로 긴장만 조성하는 저강도 도발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식 함포정치, 함포외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원래 함포외교는 강대국이 약소국에 하는 외교수단이지, 약소국이 강대국에 선택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래서 외교 교과서에서 함포외교는 강대국(superior forces)에 결코 통하지 않는 정책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대응하는 원칙과 정답이 있다. 북한 함포외교가 성공할 수 없게 하는 대응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북한군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군사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 해군이 교전규칙에 의거해 신속하게 조치한 것은 잘했다. ‘북한의 의도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데, 군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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