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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브래들리와 워싱턴 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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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혹시 벤 브래들리를 만난 적이 있나요?”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 오랜 인연을 가진 워싱턴 포스트(WP)의 본사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을 때, 친절한 이 회사 간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만 있자, 누구시라고?

벤 브래들리는 내가 품은 우상 중 하나였다. 1972년 WP는 진실을 전하겠다는 불굴의 용기로, 권력의 무서운 협박을 떨치고 현직 대통령까지 연루된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모를 지면에 토해낸다. 이를 진두진휘한 사람이 브래들리 편집인이었다. 이 보도로 WP는 워싱턴의 중소 언론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일류 언론으로 거듭나게 된다. 90년대 그가 쓴 자서전에서 나는 두 가지 말을 마음에 새겼다. “좋은 기사를 진전시켜 나가면서, 서서히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데서 느끼는 스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은 나를 의욕에 넘치게 만들었다. 나는 또 “신문을 만드는 사람과 신문에 등장하는 사람 사이에는 늘 정중한 거리가 유지돼야 한다”는 말을 기자 준칙쯤으로 생각했다.

그 브래들리가 여전히 WP에 있었다. 91년 편집국은 떠났지만, 무임소 부사장 직을 맡으며 건강한 모습으로 저술 작업과 강연 활동 등에 정력을 쏟고 있었다. 예고되지 않은 방문이라 5분여의 덕담을 주고 받는 데 그쳤지만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그는 젊었다. 신세대 직장인처럼 출입증을 목에 걸고 활기찬 목소리로 악수를 청했다. 88세의 나이를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그는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자신의 스웨터를 가리키며 “금요일이라 편안한 복장을 했다”며 초면의 외국 기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시종 미소 진 얼굴로 워싱턴 생활은 재밌는지, 취재는 생각만큼 잘 되는지 물었다. 50여 년 전 자신의 ‘뉴스위크’ 파리 특파원 시절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무실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 했다. 한쪽 벽을 메운 게시판에는 절친한 친구였던 존 F 케네디의 사진, 자신이 낙마시킨 리처드 닉슨의 캐리커처가 붙어 있었다. 책상 오른쪽 벽엔 그와 함께 WP의 새 역사를 만들었던 고(故) 캐서린 그레이엄 사주의 젊은 시절 어여쁜 사진이 걸려 있었다. 브래들리는 WP를 일류 신문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흔들림 없이 지킨 캐서린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캐서린의 아들인 돈 그레이엄 현 회장은 자신과 같은 층에 브래들리의 사무실을 마련해 놓았다. 신뢰와 존중이라는 소중한 전통이 겹겹이 쌓인 WP가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래들리와 나란히 사진을 찍으면서, 기실 별 감동받을 만한 일이 없었는데도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걸 보면 우상은 확실히 누구에게나 필요한 모양이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