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영한 '사이버 교수'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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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인터넷 방송인 '리얼 TV' 의 홈페이지(http://www.realtv.co.kr)한 코너인 '박영한 소설 창작 교실' .

"랍비여, 기운 차리소서. -제자" "앞으로 당신네 랍비가 휘두르는 채찍으로 하여 엉엉 소리내 울게 될지도 모르는 나날들이 가없이 남아 있으매. -랍비(Rabbi)"

'머나먼 쏭바강' '왕룽 일가' '우묵배미의 사랑' 등으로 알려진 중진 작가 박영한(53.추계예술대 교수)씨가 인터넷상의 유태교 율법사(랍비)가 돼 사이버 채찍을 휘둘러대고 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인터넷 창작교실을 열고 문학 지망생들을 가르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286컴퓨터를 타자기 삼아 써오던 박씨는 리얼TV로부터 '사이버 강좌' 를 제안받는 순간 기계문명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부터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글쓰고, 사진 넣고, 편집까지 혼자서 다 한다" 고 자랑한다.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인터넷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인터넷 속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

수많은 사이버 만남 중 박씨에게 가장 보람있는 것은 역시 그간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지방의 소설가 지망생들이다.

중진 작가로부터 글쓰기 지도를 받고 싶지만 여건이 허용되지 않아 혼자서 습작하던 이들, 특히 사이버 세계에 익숙한 20~30대의 젊은층이 하나 둘 온라인을 타고 날아들었다.

제자들이 이제는 40여명. 이들 중에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이미 등단한 신인 작가도 5명이나 있다. 박씨는 이들에게 철저한 실기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강의를 하고, 글쓰기 숙제를 내고, 제출한 습작을 함께 토론하고, 개인적으로 다시 검토해 고쳐서 다시 올리게하는 식이다.

토론과 일대일 강의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없다. 그래서 박씨는 요즘 평창동 산기슭에 자리잡은 작업실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11평 작업실에 아예 간이침대와 취사도구까지 갖췄다. 취기에 언뜻 잠들었다가도 눈만 뜨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달라붙는다.

"대학강의보다 더 재미 있어요. 제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 체험도 풍부한데다, 숙제가 많아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따라올 정도로 열정이 대단합니다. "

박씨는 주위에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다" 거나 "일 복 터졌네" 라고 할 때마다 빙그레 웃는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고,가르치다 보니 그만큼 재미있는 다른 일이 없어서다.

다만 제자를 먹여주고 재워주지 못하면서 두 달에 5만원씩 수강료를 받아 부담스럽단다. 그래서 수강료를 낮추고 장학생을 늘리는 방안을 리얼TV측과 협의 중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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