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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인문지 '녹색평론' 역경속 50호 금자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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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환경문제의 초점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라면 그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모든 생물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회복하고 키우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녹색평론' 의 공헌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 (박이문 포항공대 교수.철학자)

"우편물에서 '녹색평론' 을 발견하는 기쁨은 비단 저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겁니다. 환경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하는 정말 아름다운 책이죠. " (신경숙.소설가)

1991년 창간해 국내 상징적인 환경생태 인문잡지로 자리잡은 격월간 '녹색평론' 이 50호를 냈다.

자본의 물결 앞에서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는 잡지들이 많지만 이 책은 올곧게 녹색만을 지켜왔다.

'녹색평론' 을 이끌어온 발행인 김종철(53.영남대 영문학과)교수는 70~80년대 대중문화비판과 제3세계 리얼리즘을 탐구하는 문학평론가로 필명을 날리던 이.

"처음엔 2~3년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 정도면 할 말은 다 할 거고 그 다음엔 다른 사람들도 할 성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끝내기가 어려웠고 할 말도 남아 어느새 햇수로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 그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

김교수가 강조하는 환경론의 핵심은 "기술이 잔 꾀를 불러온다.

인간은 단순 소박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는 것. 이는 브레이크가 없는 과학기술 사회에 대한 거부이며 이 시대를 이끄는 주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다.

"참다운 문명이란 자발적인 기술의 포기" 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김교수는 거칠 것 없이 앞만 보며 달려나가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녹색평론을 이끌어오면서 그가 고통스럽게 여긴 것은 필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것. 경제적인 문제도 컸다.

환경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학자들이 많지만 그들의 생각은 대부분 '개발' 에 치우쳐 있었고 생태주의적 입장에서 현안으로 떠 오른 문제를 언급해줄 이가 드물었던 까닭이다.

국내 학계의 환경인식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창간 후 3년 정도의 월급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 할 정도로 힘겨웠던 '돈' 문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정기독자가 5천명을 넘어섰고 단행본도 발행해 살림은 이럭저럭 꾸려나간다.

'녹색평론' 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도 있다.

독자모임이 활발한 것은 그를 가장 고무시킨다.

녹색평론을 읽고 자생적으로 생긴 독자모임은 서울.충북.부산경남 등 모두 8곳으로 약 3백여 명의 독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교수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은 생활 속에서 환경문제를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해 보려는 사람들이다.

"제가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독자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은 저와 마음의 연대를 맺고 있는 정신적인 공동체라 생각합니다. 더 없는 저의 힘입니다. 이 분들 외에도 '다른 것은 안 믿어도 녹색평론은 믿는다' 고 말할 정도로 신뢰해 주는 토지문화관의 박경리 선생님, 정신적.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박완서 선생님도 계시죠. " 김교수는 녹색평론은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술문명을 비판하는 김교수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옳지만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적이란 비판도 만만찮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메시지야말로 참된 인간의 가치를 지키려는 몸부림임을 누구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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