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극단 예삶 '홍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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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연극 '홍어' (김태수 작.송미숙 연출)는 공연 목적 자체가 매우 사회적이다. 지난해 5월 한국연극배우협회(회장 최종원)소속 30대 연기자가 모여 만든 극단 예삶이 사회봉사 차원에서 무대에 올렸다.

극단 예삶은 공연 수익금의 전액을 불우 장애인을 돕는데 쓰기로 결정하고, 그 첫 작업으로 '홍어' 를 선보였다.

가난한 집에서 인정이 나온다고 했던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하루하루가 힘겨운 연극계가 이웃돕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일단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선공연이라는 명분을 고려하면 작품의 질이 떨어질 것 같은 우려도 들지만 대본.연출.연기 모두 단단하다.

더욱이 정보화.과학화로 요약되는 2000년대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폭이 더욱 커질 무속과 과학의 대립을 남녀간 사랑을 매개로 풀어놓아 호응을 얻고 있다.

작품의 무대는 서해안의 작은 어촌. 풍어를 기원하는 뜻에서 해마다 거행되는 당제(堂祭)의 제주(祭主)를 뽑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원래 순서에 따르면 명구(이진우)가 제주를 맡아야 하나 마을 대표들은 그가 술을 좋아하고 다리가 불편하며 행실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서울대 법대생인 형욱(전형재)으로 제주를 전격 교체한다.

형욱은 이른바 21세기형 인간이다. 첨단과학시대에 남근목을 깎으며 풍어제를 올리는 어촌의 뿌리깊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급기야 금기를 어겨가며 어릴 적 여자친구인 영선(정재은)을 당제 전날에 범하고 만다.

이후 고기를 잡으러 나간 어선이 돌풍을 만나 침몰한다. 여기서 명구는 당제 당일 신세 한탄을 늘어놓아 제사를 망치게 했다는 오해를 받아 주민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다.

게다가 그가 진실로 사랑했던 영선은 형욱에게 버림받는 처지가 된다. 명구는 이런 영선을 껴안으려고 하나 영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윽고 영선에게 강제로 키스하려던 명구는 그녀가 휘두른 돌에 맞게 되고 영선은 명구가 죽은 줄 알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의 무지, 형욱으로 상징되는 무정한 과학, 명구가 대표하는 우직한 남성상이 가세해 한 여자를 죽음이란 커다란 비극으로 몰고간 것이다. 영선을 제외한 모든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가해자로 그려진다.

이처럼 '홍어' 는 토속적 소재를 현대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당제.남근목.굿판 등이 섞이며 전통무속의 겉과 속을 생각하게 한다.

영선의 죽음은 갈수록 위축되는 우리 전래문화의 자화상으로도 다가온다. 다만 명구와 주민 대립, 형욱과 명구의 대결, 세 남녀의 사랑이 단선적으로 연결돼 극적 긴장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2월 27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월.화 오후 7시, 목.금.토.일 오후 4시, 오후 7시(월 쉼). 02-764-5087.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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