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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춘과 전쟁' 나선 김강자 종암경찰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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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성년자 윤락을 뿌리뽑고야 말겠다는 한 여성경찰서장의 단호한 의지가 전국을 달구고 있다.옥천을 뒤집어 놓았던 ‘티켓다방작전’의 기세를 몰아 서울에서도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은‘미아리텍사스 작전’을 펼치고 있는 김강자(金康子)종암경찰서장(55)을 본지 홍은희문화부장이 만났다.

-김서장께서 지펴놓은‘청소년 매매춘과의 전쟁’의 불길이 힘차게 타오르고 있습니다.현재 진행상황은 어떻습니까.

“부임하자마자 미아리 텍사스의 실태파악을 했습니다.윤락녀의 40%정도가 10대였어요.그러나 무조건 덤비지 않았습니다.단속보다 자율정화를 유도했습니다.그래서 업소들이 미성년자를 고용할 경우 어떤 처벌도 받겠다는 포기각서를 받았어요.업소 내부를 가리는 커튼도 없어졌습니다.한 업소는 31명의 윤락녀가운데 16명의 미성년자를 집으로 돌려보냈어요.업소들이 제대로 약속을 지키는지 확인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 단계 작전은 뭡니까.

“공급원의 차단입니다.공중 화장실에 붙은 침식제공·월수 최고보장·초보자 환영이란 스티커를 보고 일거리를 찾아 나선 가출청소년을 유인해 사창가로 넘기는 보도방(공급책)을 단속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이들은 청소년들에게 처음에는 술집에서 경리보는 일을 맡겼다가 다음에는 술 따르게 하고 마침내 몸을 팔게하는 단계를 거칩니다.물론 도망을 치지 못하게 처음에 강간한 뒤‘너는 버린 몸’이라고 세뇌시키죠.그리고 나서 윤락가에 소개비와 유니폼비등을 개인빚으로 얹어 떠넘깁니다.이미 10명을 붙잡아 수사 중입니다.

여성단체들과 연계해 윤락의 길을 걸었던 미성년자들을 위한 사회적응 프로그램 마련 등 후속조치도 마련하겠습니다.벌써 후원자가 많이 나왔어요.한 음료 회사는 이 프로그램에 써달라며 3천만원을 보내 주었고 모 화장품 회사는 미성년 윤락녀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의사까지 전해왔습니다.”

-티켓다방에 이어 미아리텍사스 작전으로‘매매춘 추방의 기수’로 부상했는데요,유독 매매춘 추방에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이게 매매춘 반대 운동이 아니라 청소년보호 운동이라 생각합니다.결정적인 계기는 93년 서울경찰청 민원봉사실장 때였어요.한 엄마가 딸이 미아리 사창가에 억류돼있다며 구해달라고 하더군요.제 임무는 아니었지만 나서기로 했죠.경찰이라고 밝혔는데도 그 업소는 저를 3시간이나 감금시켜놓더군요.무법천지라고 느꼈습니다.그래도 그건 괜찮았어요.성병에 걸린데다 초점마저 잃어버린 열네살의 꼬마를 보는 순간,완전히 돌겠더군요.그 때 미성년자를 원하는 어른남자들은 썩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죠.”

-청소년들을 7만원의 화대를 받아 업주가 6만원을 챙기고 고작 1만원만 건네주며 서로 감시하게 해 목욕탕까지 혼자 갈 수 없게 한다면‘현대판 노예’가 아닙니까.이런 업주를 자율정화로 다 면책을 시킵니까.

“미성년자 윤락이 근절되고 나면 횡포를 부린 업주에 대한 처벌을 진행할 것입니다.성인윤락녀라고 해도 이들을 감금상태에 두었다면 처벌을 받아야죠.”

-일각에서는 매매춘이 현행법상 불법이므로 성인의 매매춘도 단속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우선 청소년 매춘 근절이 급합니다.50만이 넘는 청소년이 윤락가에 있는 것부터 풀어야죠.사실 어른들이야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지만 미성년자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여성의 몸이란 게 아이를 낳는 신성한 것인데 성숙하기 전에 충격을 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구요.그리고 무엇보다 미성년의 매춘은 그들의 인격을 철저히 파괴시킵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단속이 있었지만 구두선에 그친 때가 많았습니다.이번‘전쟁’도 김서장이 있을 때만 ‘반짝’하고 마는 것은 아닙니까.

“이번에는 흐지부지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지난날 실패가 많았던 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데다 후속조치도 없었기 때문이죠.지금‘청소년 매매춘과의 전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습니다.또 여성단체들과 연계해 이들이 정상인으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장단기 대책도 세우고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경찰청장을 비롯해 모든 동료들의 의지가 확실해 반드시 뿌리가 뽑힐 겁니다.미아리텍사스만 해도 불과 일주일도 못되는 새 많이 달라졌어요.각계의 성원도 뜨겁습니다.서울 천호동에서는 저에게 다음 부임지는 꼭 강동경찰서로 해달라고 팩스도 받았습니다.”

-유락지역을 단속하면 일반 주택가로 스며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단속을 피하느라 미성년 윤락녀들을 주택가에 강제수용해온 업주들이 이를 원용해 군데군데 비밀 영업을 할 경우 막을 대책이 있습니까.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천호동 텍사스라고 할 수 있는데 주택가로 스며들건 어디로 옮기든 경찰이 계속 의지를 가지고 알려고 들면 다 알 수 있습니다.주민들을 속이고 영원히 숨을 수는 없어요.그때마다 단속하면 됩니다.이번에 제가 도입한 미성년 윤락고발에 대한 포상제도(신고자에게 20만원을 보상함)도 좋은 무기입니다.”

-최근 유흥가에는 자발적으로 매춘을 하겠다는 미성년자들이 적지 않다고도 하는데요.

“성도덕이 문란해져 삐뚤어진 아이들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하지만 그건 아이들이 나쁜 게 아니라 사회환경이 나쁜거죠.음란비디오가 횡행하고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가출을 하죠.실태 파악을 해보면 제 발로 사창가로 걸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속임수에 걸려드는 거죠.혹시 돈이 필요해서 윤락가에 오는 애가 있다고 해도 어른들이 돌려보내야 합니다.그리고그런 청소년을 비난해서도 안돼요.그들은 성인만큼 판단력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빈부,지식여부에 상관없이 어린여성을 찾는 남자 어른들이 문제입니다.”

-어린 나이에 윤락을 경험한 이들은 평생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 같은데요.

“한 소녀를 사창가에서 구해놓으니 처음에는 다시 술집으로 가겠다고 얘기를 하더군요.정상인으로 살기를 포기한 거죠.설득을 해도 안되기에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보냈는데 왜 이런데 넣었느냐며 심하게 반발했어요.그런데 6개월 후에 가보니 달라졌어요.그 곳에서 직업훈련도 받고 중등과정까지 마치겠다고 해요.그 애는 지금 정상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윤락을 경험한 소녀들이라도 보호시설에서 잘만 관리하면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미성년 윤락녀가 50만 명도 넘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들을 보호할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게 이제부터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아이들에 따라 바로 정상 생활을 할 수도 있어요.그러나 대개는 적응훈련이 필요합니다.사창가에 머문 기간에 따라 치유 프로그램이 다양해질 것입니다.이들을 위해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할 차례죠.사실 지금 상황은 너무 열악합니다.이제 미성년 매매춘 근절의 불길을 지폈놓았으니 대책도 빨리 마련되겠죠.”

-매일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미아리 텍사스 순찰을 돈다고 들었어요.가정은 포기하셨습니까(웃음).

“95년 양천서 방범과장을 맡은 이후 줄곧 집에 못들어 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요.대학3학년인 큰 딸이 밥해서 아빠를 출근시킵니다.그런데도 불평은 커녕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힘내라고 격려하는 남편과 딸이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자녀들이 잘 자란 걸보면 특별한 가정교육 비법이 있나봐요.

“특별히 어떻게 한 것은 없습니다.그냥 제가 하는 것을 보고 자랐지요.그렇지만 늘 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어릴 때 잘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어 지금도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만 나면 덜컥 가슴이 내려앉고 슬퍼져요.”(이 대목에서‘철의 여인’김서장은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김서장처럼 집행력을 가진 여성서장이 좀 더 일찍 나왔으면 우리 성문화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만약 여성들이 일찍 진출했다면 저처럼 문제의식을 가졌을테니 이처럼 황무지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미성년 매매춘 근절’이 효과를 보이는 것도 그간 ‘저여자는 한다면 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여성이 부드럽고 유약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앞에서 모성애를 발휘해봤자 안통할 것 같아 강하게 밀어붙이고 후려쳐‘여성이 무섭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죠.제가 양천서 방범과장을 맡았을 때 일선 파출소들이 다른 때보다 더 긴장을 했다고 하니까요.

경찰은 어릴적부터 꿈이었고 지금 무척 만족합니다.다시 태어나도 경찰을 할겁니다.현장에서 과감하게 뛰어다니는 일이 저는 좋은데 아마도 왈가닥이었던 저를 기죽이지 않고 남자 형제들과 차별 없이 대해준 부모님의 덕이라 생각합니다.”

정리=신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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