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도는 민방위 中] 방독면? 마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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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방위 장비 중 가장 많이 보급돼 있는 것은 방독면이다.

1986년부터 세차례의 보급계획에 따라 지난 연말 현재 2백88만개(일반인 자율 확보 1백37만개 포함)가 갖춰져 있다.

10개년계획이 끝나는 2007년까지 군.경.예비군과 6세 이하 어린이, 벽지 농어촌 주민을 제외한 2천2백53만명 전원에게 모두 보급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행자부의 계획이다. 문제는 성능이다.

현재의 2백88만개 중 96%를 차지하는 일반형 방독면(2백70여만개)은 전쟁용 화학가스만 걸러낼 수 있도록 기능이 한정돼 있다. 화재 때의 연기나 유독가스.열기는 물론 최루가스.연탄가스.산업용 가스 등 오히려 실생활에서 발생하기 쉬운 유해성분 앞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민방위 지휘자 등을 위한 나머지 12만개 정도만이 군용(軍用)처럼 모든 유독가스를 막아낼 수 있는 소위 '한국형 방독면' 일 뿐이다.

이유는 1983년 제정된 공업진흥청의 일반방독면 규격 고시(KSM6685) 때문이다. 군사정권 아래서 잦은 시위진압을 위해 최루가스를 거르는 필터를 아예 제거해 생산하도록 한 것. 이 규정이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17년째 거의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화학가스를 막을 정화통내 활성탄의 분량도 군용의 3분의1에 불과해 6분 이내에 현장에서 대피해야만 위험을 막을 수 있도록 제작돼 있다. 최근 전쟁의 양상이 핵.화학전 형태를 띠면서 그에 따른 위협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불안한 실정이다.

이같은 지적들에 따라 행자부는 지난해 전쟁가스용 정화통과 화재용 정화통을 각각 만들어 필요에 따라 바꿔 끼워 사용하는 새 방독면의 개발을 관계기관에 맡겨 내년초부터 실용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정화통을 바꾸는 일이 수월치 않은 데다 이미 확보된 2백88만개는 화재용 정화통과의 호환성이 없어 결국 전시(展示)용으로나 남게 될 처지다.

기획취재팀= 김석현.신동재.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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